[최진우의 전쟁영화 이야기(19)] ‘이 세상의 한 구석에’ 원자폭탄이 앗아간 평범한 삶

최진우 승인 2024.01.20 06:00 의견 0
영화 ‘이 세상의 한 구석에’ 포스터. @뉴스임팩트 자료사진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인류역사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로 꼽히는 원자폭탄. 그리고 그 원자폭탄이 처음으로 사용된 곳이 히로시마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의 잔임함과 무서움이 만천하에 드러난 일본 히로시마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린 만화영화다. 이 영화는 만화 출판사인 후타바샤 ‘만화액션’에서 2007년 1월호부터 2009년 1월호까지 연재한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자는 코우노 후미요다.

만화는 작가의 실제 외할머니의 체험에 기반한다. 작가의 외할머니는 히로시마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구레시로 시집을 가서 작가의 어머니를 낳았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구레시와 히로시마다.

주인공 호조 스즈는 구레시로 시집온 새댁이다. 남편 호조 슈사쿠와 시어머니 호조 상, 시아버지 호조 엔타로 등 스즈의 일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스즈는 재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로 구레시에 거주하며 전쟁의 임박한 위협에 직면한다.

미군의 파상적인 공격으로 일본의 상황은 점차 악화된다. 식량 부족과 미군의 공습 등 스즈는 전시 상황의 어려움에 처한다. 스즈는 미군의 폭격이 거세지자, 고향인 히로시마 에바로 돌아갈 것을 고민하는데, 1945년8월6일, 원자폭탄이 히로시마를 초토화시킨다.

스즈는 원자폭탄에 몰고온 파괴적인 결과에 그대로 노출된다. 소중한 가족들을 잃고, 일러스트레이터의 생명과도 같은 오른손을 잃는다. 원자폭탄은 파괴적 결과만큼, 빠르게 일본의 항복으로 이어진다. 전쟁은 끝났고, 스즈의 가족은 종전이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즈는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서 원자폭탄이라는 용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신형폭탄이라는 말에서 원자폭탄임을 누구나 유추할 수 있다. 영화는 듣도보도 못한 원자폭탄이라는 무지막지한 신형폭탄으로 수많은 생명을 잃어버린 히로시마의 살풍경한 일상을 묘사한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신음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스즈는 패전선언 후 구레시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오열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가해자의 입장에서 중국과 한국에서 수탈한 식량으로 먹고 살았고, 일본이 폭력을 통해 가해국가였고, 결국 폭력으로 종말을 맞게되었다며 비통해한다.

“차라리 이런 것들을 모른채 죽었으면 더 좋았을걸”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주인공은 가해국 일본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 사실에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케한다.

전쟁은 가해국과 피해국, 모두에게 비극을 안겨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지만, 결국은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전쟁을 일으킨 정책 책임자도 아니고, 정치와는 상관없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일반인들은 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는 것이 전쟁이 갖는 비극적 속성이다.

영화를 보면서 일본의 침탈을 경험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일본인이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처럼 묘사하는 여러 장면에서 약간은 불편함을 느낀다.

영화의 말미에 뜬금없이 태극기가 등장하는 것도, 일본이 가해국임을 주인공인 스즈가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도 한국인으로서는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대목이다.

평점: ★★★★☆ (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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