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서평] 그리스인 이야기서 우리 사회의 오늘을 본다
우중 정치 속 선동만 판쳐… 구성원들이 각성해야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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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5 12:43 | 최종 수정 2023.06.0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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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임팩트=이정희기자]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쏟아낸 작심 발언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노동·연금·교육을 포함한 구조 개혁이 필요함을 알면서도 이해 당사자 간 사회적 타협이 어려워 진척을 못 하는 것', '저성장을 재정·통화 정책으로 해결하려 하면 나라가 망가진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창용 총재 말처럼 우리 사회는 미래를 위해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 뻔히 보면서도 실행을 못 하고 있습니다. 타협을 굴종, 배신, 변절로 보는 척박한 풍토 때문입니다.
특히 국내 정치가 그렇습니다. 내 얘기, 우리 진영 주장만 옳고 상대편은 무찔러야 할 거악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문화가 정치를 지배하고 있죠. 합리적 대화와 토론이 배제되고 무절제한 선동이 판치는 데마고기아(demagogia·우중 정치)의 속성을 강하게 띠는 겁니다.
이런 걱정을 하다가 최근에 읽은 책이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그리스인 이야기'입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고대 그리스의 흥망성쇠가 책 3권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 도시 국가의 태동과 성장을 그린 1권, 마케도니아 대왕 알렉산드로스의 활약을 묘사한 3권도 재밌지만 가장 눈길이 간 건 2권이었습니다. 아테네 민주정의 전성기와 데마고기아 정치인들로 인한 몰락을 다루고 있어서죠.
시오노 나나미가 통찰한 데마고기아 정치인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중이 마음 깊은 곳에 품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부채질하는 데 매우 뛰어납니다. 대외 관계에선 불필요한 강경론을 고집해 적을 늘립니다. 긴 안목과 냉철한 판단 없이 당장 인기몰이할 수 있는 정책만 펴다가 국력을 소진합니다.
데마고기아 정치인들의 최대 실패 사례로 멜로스 섬 학살과 시칠리아 원정 패배를 꼽을 수 있습니다. 페리클레스처럼 국가를 현명하게 이끄는 정치인이 주도권을 휘둘렀던 아테네 민주정 전성기 시절이라면 절대로 발생하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하지만 정국은 민중을 충동질하는 데만 유능한 데마고기아 정치인들 손에 넘어간 지 오래였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결정이 아테네 패망을 불러왔죠.
시오노 나나미는 아테네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이었고,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해 자멸했다고 서술합니다. 정말 공감 가는 평가입니다. 데마고기아 정치인들이 아무리 설쳐대도 민중이 그들에게 힘을 안 보탰으면 아테네 민주정은 끄떡없었을 테니까요. 결국 아테네를 망하게 만든 건 숙적 스파르타나 페르시아가 아니라 민중으로 표현되는 아테네인이었던 겁니다.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저출산, 저성장, 고령화 이슈를 푸는 게 시급함에도 해법인 구조 개혁을 논의조차 못 하는 우리 사회가 아테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답하긴 솔직히 힘들죠.
그리스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각성하길 기대합니다. 이제라도 미래를 위해 국민 모두 고통을 분담하자고 용기 있게 말하는 페리클레스식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민주 정치) 정치인들을 밀어줘야 합니다. 그 길만이 쇠망을 피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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