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서평]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회고록이 밝힌 인간의 한계
대통령·대기업 회장 등 권세가들도 불리한 사실 앞에서 변명·회피 일삼아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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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09:34 | 최종 수정 2023.03.3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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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임팩트=이정희기자] 최근 정계와 법조계에 큰 논란을 빚은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쓴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입니다.
이인규 전 부장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창업주, 이학수 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 우리 사회의 거물급 인사들을 수사한 검사입니다. 그런 그가 회고록에서 수사 내용을 상세히 밝혔으니 파장이 클 수밖에요.
특히 책 마지막에 부록으로 기재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개요는 회고록의 결정체라 할 만합니다. 법리, 증거, 피의자 측 주장, 수사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면서 수사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이인규 부장의 치밀함과 꼼꼼함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수많은 매체가 한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보다 권세가들조차 극복할 수 없었던 인간의 한계를 짚고 싶습니다.
통상적으로 일반인들은 살면서 잘못을 직시하지 못한 채 변명과 회피를 일삼습니다. 탓할 일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 처지를 가장 우선시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일반인이 아닌 지도자급 인사는 잘못했을 때 용기 있게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습니다. 남 위에 서려면 그에 걸맞은 미덕을 갖추라는 거죠.
안타깝게도 이인규 전 부장 책에 나오는 거물들은 그런 미덕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변명하고 회피하기 바빴죠.
구체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했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와이 미?(Why me·자신이 SK 부당 내부거래 사건과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했죠. 김준기 창업주는 "왜 저만 미워하십니까!(동부그룹 부당 내부거래 사건 관련 항변)"라고 목소리를 높였고요.
이학수 전 본부장은 "아랫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최종 결정권이 없는 이인자의 서러움을 토로했습니다. 검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면한 박연차 회장은 "대통령님! 우짤라고(어쩌려고의 사투리) 이러십니까"라며 서러운 감정을 전했고요.
이처럼 권력자들도 불리한 사실 앞에선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거죠. 권력자들에 대한 일방적 찬양이나 비판으로 뒤덮인 다른 책에선 찾을 수 없는 이인규 전 부장만의 독보적 기록입니다. 감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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