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김서울 재독 칼럼니스트] 이런 두 철도 산업이 만났을 때, 상황이 더 나빠지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늘어나는 빛과 갈 수록 엉망이 되는 운영, 그리고 그로 인한 독일인들의 자국 철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독일 정부는 철도 개혁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기 1년 전부터 철도 개혁을 위한 위원회가 꾸려졌고, 심각한 재정난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철도의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공기업에서 주식회사로의 전환을 통해 재정을 확보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떤 나라와 기업이, 간신히 숨만 붙은지 오래인 회사의 주식을 사려고 할까? 결국 독일 정부가 단독 주주인 상태로 출발할 수 밖에 없었고,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독일 정부는 여전히 도이치반의 유일한 주주이다. 독일의 철도 개혁은 33년 째 아직도 ‘진행 중’ 인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연착, 누락, 잦은 변동 사항 등의 문제도 모두 이 재정 문제에 근거 해 있다. 들일 수 있는 비용이 턱없이 적으니 설비는 갈 수록 낡아가고, 악천후와 많은 운행 수 등의 갖은 요인들로 쉽게 망가지나, 수리하고 관리할 인력 역시 비용 문제로 구할 수 없다.
독일 철도가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수리중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리고, 독일의 열차들은 이 다급한 수리작업들을 기다리거나 피하느라 늦고, 멈추고, 철로와 철로 간을 종횡 무진한다. 두 세 시간을 훌쩍 넘기는 연착과 같이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들의 파업이다. 재정난 때문에 좋지 못한 처우,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 과다 등 이용자들에게서 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도 불만사항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 투성이 도이치반이 변화할 조짐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도이치반 뿐 아닌 전체 독일 공공 서비스에 팽배한 관료주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관료주의란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면 꿈쩍도 하지 않는” 공공 서비스 종사자들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원래 그런 것”, “나의 관할이 아니다”며 서로 떠넘기니 문제가 해결 될 리가 없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는 민원 시스템 등이 잘 발달해 있는 탓인지, 늑장을 부리거나 이용자의 고충을 나 몰라라 하는 일은 좀처럼 관용되기 어렵다.
또, 이런 민원 시스템이 발달하는 데에는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정서가 한 몫 했을 터인데, 이는 독일 국민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마음가짐이다. 그들은 빠르기보단 정확하고, 융통성이 있다기 보다는 원칙주의적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도 선뜻 반기기보다는 조심스러운 접근과 오랜 검토를 거치는 것이 그들의 정신인 것이다. 디지털 행정이 주류로 자리잡은 한국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아직도 대다수의 행정 업무들이 우편으로 처리된다.
게다가 그 속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려서, 서류 하나를 받기 위해 6~8주를 기다려야하는 일들도 자주 있다. 카드와 NFC등을 이용한 결제 방식도 현재와 같은 정도로 확산된 지 고작 3년 정도 되었다. 그 분기점은 코로나 사태인데, 그 이전에는 현금을 사용해 결제하는 방식이 주류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늘 같은 시간에 하루 일과를 보내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이 그가 산책을 나올 때면 시간을 알 수 있었다는 철학자 칸트를 아는가? 그는 평생 독신이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구혼을 받고 무려 7년간의 심사숙고를 하느라 구혼자를 떠나 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독일인이다. 정말 독일인 다운 독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독일인의 정신(Mentalität)은 긍정적인 면도 다수 가지고 있다. 모든 일에 앞서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한국의 “빨리 빨리” 정신이 효율이라는 목적을 앞세워 오히려 행위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사태는 자주 목격된다.
그러나 그것이 관료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형태로 굳어지고, 효율이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 때를 놓치게 만드는 것은 분명 꺼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너무나도 다른 두 나라의 모습을 모두 경험하고, 나는 그 둘을 적당히 혼합하면 참 이상적이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나 중도란 늘 어렵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진정으로’ 선진국 다운 사회, 정치, 교육을 누리고는 싶지만 매번 도이치반을 저주하는 나의 마음은 너무 큰 욕심인 걸까. 다만 확실한 것은, 독일 내의 여론도 대부분 도이치반의 현 상태에 대한 반감으로 기울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Deutschbahn ist keine deutsche Bahn”이라고 하지만, 글쎄, 어떤 면에서 도이치반은 너무나도 독일스럽다.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을까? 지금껏 감히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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