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우크라에 38선이 그어진다면

최진우 승인 2023.01.11 15:15 의견 0
우크라이나 병사가 포를 발사하고 있다=BBC뉴스 유튜브 공개영상 캡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38선은 한국분단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는 숫자다. 일본 패망직후인 1945년 8월 미국과 소련은 남북한을 분할통치하기 위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을 분단하기로 결정한다.

서해에서 시작해 황해도 옹진군, 벽성군, 해주시, 연백군, 경기도 개풍군, 개성시, 장단군, 파주시, 연천군, 포천시, 가평군, 강원도 화천군, 춘성군, 양구군, 인제군, 양양군을 관통했던 38선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그 경계선이 무너지고 3년간의 전쟁과 휴전협정으로 지금의 군사분계선으로 대체된다.

군사분계선과 38선은 경계선이 다르고, 남북한에 포함된 지역 역시 상이하지만 외국에서는 군사분계선 보다는 38선을 한국분단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힘없는 국가의 설움은 우리땅을 두고 미국과 소련이 분위 38도선으로 할 것인지, 38도30분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37도30분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갔다는 점 만으로도 비참함을 금할 수 없다.

20세기말까지 지구상에 분단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동서독, 예멘 등이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동서독이 통합되고, 예멘 역시 1990년 남북한이 통합되면서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는 한국만 남아있게 되었다. 그래서 38선은 더욱 가슴 저미는 단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38선이 뜬금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화두로 떠올랐다.러시아가 한반도에 38선을 그어 미군과의 대치를 끝냈던 것처럼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반으로 갈라 전쟁을 끝내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구상이 밝혀진 것은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인사의 입에서 나왔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NSC) 서기는 최근 전황 정보를 전하는 현지 방송사들의 연합 뉴스 프로그램인 통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러시아가 이런 구상을 갖고 있다고 폭로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다닐로우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재 (러시아로부터) 한국식 시나리오를 제안받고 있다. (남북한을 갈라놓은) 악명 높은 '38도선'(휴전선)이다”라고 전했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한국식 38선을 긋는다면 러시아가 현재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4개 지역(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자포리자주, 헤르손주)은 러시아가 갖고 나머지는 우크라이나의 지배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휴전하는 방안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다닐로우는 그러면서 “최근 한국 대표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들은 (휴전선 설정이라는) 양보를 한 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있더라”면서 “현재 그들(한국인들)은 (장기적 분단이라는) 문제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닐로우와 대화한 한국대표들이 누구인지, 실제로 러시아가 그런 구상을 밝혔는지는 현재로선 확인하기 매우 힘들어 보인다.

다만 러시아가 단기간에 끝낼 것으로 자신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거의 1년여가 다되가고 있다는 점과,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날아든 전쟁비용 청구서가 이미 120조원을 넘어었다는 분석은 푸틴이 얼마나 초조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푸틴은 “시간은 나의 편”이라며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크라이나가 불리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일각에서는 러시아가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내전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크라이나 완전점령후 괴뢰정권을 세워 위성국가로 만들겠다는 당초의 구상에서 한발 물러나 이미 점령중인 동부 4개 지역을 실효지배하고 적당한 선에서 전쟁을 끝내는 것도 푸틴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지로 보인다.

물론 이런 구상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들에게 먹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는데다, 영토양보는 단 한뼘이라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진위가 불분명하지만 38선 얘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현재 푸틴과 러시아가 처한 곤란한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

다닐로우는 “러시아의 드미트리 코자크 대통령행정실 부실장이 은퇴한 유럽 정치인들과 회담을 하러 가서 그들을 통해 러시아가 4개 지역을 점령중인 현재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양보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우리를 휴전 협상으로 나오도록 강요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분단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의 선택지에는 전혀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전쟁비용에 고심하고 있을 푸틴이 과연 38선 같은 분단시나리오를 구상했는지는 진위여부를 떠나 충분히 그럴듯한 소설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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