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울의 독일편지 15편] 프랑크푸르트, 독일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며 (끝)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무데도 없다

김서울 승인 2022.10.24 15:55 | 최종 수정 2022.10.24 20:31 의견 0

독일 프랑크푸르트 역 근처에 마련된 마약 투여시설에서 마약 중독자가 주사기로 자신의 몸에 마약을 투여하고 있다. =ZDFheute Nachrichten 유튜브 영상캡쳐


[뉴스임팩트=김서울 재독 칼럼니스트]성매매에서의 대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공적으로 금지해도 계속된다면, 오히려 그것을 양지로 끌어올려 제대로 관리를 하고, 성산업 종사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성매매가 합법이고, 어떤 식으로든 관리되고 있는 이곳 독일에서도 끊임 없이 ‘규격 외’의 시도들이 벌어지고, 오히려 성산업 종사자들의 인권을 해치는 일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꾸준히 일어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렇듯 어떤 일들은 인류 역사와 동반하며 꾸준히 사회적 문제가 되고는 한다. 그것들의 뿌리는 깊고, 다른 수많은 뿌리들 과도 함께 얽혀 있는 탓에 수월히 제거되지가 않는다.

어쩌면 뿌리보다는 ‘전염병’이 더 적절한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를 겪은 우리 모두가 잘 알겠지만, 아무리 방역과 치료에 최선을 다 해도, 그것은 약간의 기미만 남아있으면 또다시 세상속으로 번져간다. 그리고 다른 것들과 상호작용하며 점점 더 복잡하고 떨치기 어려운 변종을 낳는다.

따라서 무엇이 그 적확한 해답인지는, 지금의 나로서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 또는 ‘바뀔 수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말마따나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 손 두 발이 다 묶여 꼼짝도 못 하는 상태에서도 인간은 사고의 자유를 갖고, 또 그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다. 어떤 한 사람의 삶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정해진 토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뒤 돌아보며 자기가 세상에 내던져진 이유를 스스로 물을 수 있고, 앞으로 어떤 자기 자신이 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말로 가난과 질병 등 삶의 시작부터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 독일에서도 빈곤의 대물림은 큰 문제이다. 이를테면, 8~9세에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기술자나 단순 노동자가 될지가 거진 결정되는 독일만의 특이한 교육 시스템은 이런 논의의 중심에서 항상 비판의 목소리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인간이란 하나의 사물이 아닌 가능태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마약이 가져다주는 인스턴트 행복에 중독될 수가 있다. 타인에게 자기의 몸을 온전히 내맡겨야 하는 수고로운 성노동에 종사해야만 하거나, 종사자들의 사사로운 역사는 묵살한 채 그저 쾌락을 구매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전부가 아니고, 영원 불변한 물리법칙과 같은 것도 아니다.

물론, 긍정적 변화에는 개별적인 것으로서의 개인 뿐 아니라 추상적이고 구조적인 것으로서의 국가, 정부, 또는 사회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사람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그들로 하여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불공정한 사회 구조, 제도, 대중적 인식(여론)등의 거시적인 조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적어도 계속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살아남기를 결정했다면 삶이 무엇인지를 직면해야 한다. 그 텅 빈, 그리고 가변성의 파도로 출렁이는 심연은 불안스럽고 때로 너무나도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똑바로 마주했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의 삶’을 살 수가 있고, 살아만 있다면 단 한번은 마주칠 기적의 순간을 의식치 못한 채 흘려보내지 않을 수가 있다.

새 도시로 오며 슬프고 낯선 풍경들을 두 눈에 많이 담았다. 그리고 그를 통해 내가 마음속으로 약간이나마 더듬어본 생각들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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