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서평] 기업 재판을 이해하는 지름길 '변호사가 경영을 말하다'

이정희 승인 2022.09.11 05:33 의견 0

변호사가 경영을 말하다=뉴스임팩트

[뉴스임팩트=이정희기자] 기삿거리 발굴을 위해 재판 취재를 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 종류의 재판이 있지만 기업 이슈를 다루는 재판을 특히 선호합니다. 쟁점이 복잡하지만 알아 가는 재미가 있고, 기사의 파급력도 커서죠.

다만 기업 재판 기사를 쓰다 보면 골치가 아픕니다. 상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세법, 형법, 형사소송법 등이 얽히고설킨 경우가 많아서죠. 이 때문에 취재하는 것 이상으로 어떻게 이해할지가 중요합니다.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백날 열심히 취재해봐야 기사에 써먹을 수 없으니까요.

임정근 변호사가 쓴 책 '변호사가 경영을 말하다'는 기업 재판을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을 제시해 줍니다. 재벌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일감 몰아주기, 전환사채를 통한 경영권 승계, 상속 분쟁, 인수·합병, 경영권 분쟁, 투기자본으로 손가락질받는 해외 사모펀드, 해외 페이퍼컴퍼니와 탈세, 분식회계, 지연 공시 같은 증권 범죄, 법정 관리와 파산까지 기업 재판의 주요 쟁점이 책 한 권에 망라돼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임 변호사가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어려운 법률 용어를 최대한 쉽게 풀고, 판례 문구를 무작정 인용하기보다 해설을 덧붙이고, 쟁점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장마다 제시하고 있습니다. 법조인답지 않게 독자를 배려하는 서술을 하려고 애쓴 거죠.

책의 인상 깊은 구절을 소개합니다. '주주가 회사 재산을 가져갈 수 있는 합법적 방법으로 배당과 급여가 있다. 그런데 배당은 주식에 비례해 지급되므로 보유 주식이 적으면 배당도 적다. 높은 급여를 받으려면 이사로 취임해야 하는데 주주총회 승인이나 이사로서의 법적 의무가 부담스럽다. 지분이 적은 회장 입장에선 배당과 급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회사의 부를 이전할 유인이 있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국내에서 많이 쓰인 게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다.'

지금껏 많은 기자가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관련 기사를 써왔습니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가 본질적으로 '왜' 발생하고, 총수는 '무엇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지 제대로 짚은 기사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임 변호사는 배당과 급여로 회사 재산을 가져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말합니다. 매우 설득력 있는 서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법원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불법 승계 재판, 최신원 SK네트웍스 전 회장 횡령·배임 재판, SPC그룹 파리크라상 일감 몰아주기 제재처분 행정소송, LIG그룹 총수 형제 탈세 재판 등 많은 기업 재판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경영을 말하다'를 제대로 소화하고 기업 재판을 접하면 시야가 확 달라질 겁니다. 감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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