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푸틴의 웃음, 에너지 자원 있고 없고의 차이

최진우 승인 2022.09.05 16:06 의견 0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독일등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채널A뉴스 유튜브 영상 캡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지난 2월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겨냥해 사상 유례없는 제재를 들고나왔다. 특히 금융시장의 제재는 러시아를 석기시대로 돌려놓을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현재, 러시아는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국가부도는커녕 오히려 전쟁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초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전쟁 이전과 비교해 약간 줄어든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고 있다.

전쟁으로 석유 가격과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던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는 전쟁 이전보다 에너지 수출로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1~7월중 석유과 천연가스 판매로 970억달러(132조원)을 벌어들였고, 이 가운데 740억달러는 석유수출이 차지했다.

러시아의 석유수출은 하루 740만 배럴로 전쟁 이전과 비교하면 60만 배럴 정도 줄었다. 그러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석유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은 월평균 200억달러(27조원)로 전쟁 이전인 월평균 146억달러(19조6000억원)보다 7조4000억원이 더 많았다.

이쯤 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에너지 패권을 쥐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서방이 아무리 제재를 가해도 러시아가 에너지 시장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은 대체불가한 자원이기 때문이다.금수기간 중에도 중국은 러시아 석유를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무더기로 사들였고 인도, 터키 등도 매수행렬에 동참했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산 원유의 상당량이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중동 산유국에도 팔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산유국들은 국제시장에서 유통되는 원유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여 다시 가공해 해외로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드인 러시아가 메이드인 사우디아라비아 혹은 메이드인 아랍에미리트로 둔갑되어 다시 팔려나가고 있다는 점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허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별로 보면 체코와 라트비아는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100% 의존하고 있고 헝가리 역시 95%에 달하고 있다. 독일(65%)과 이탈리아(43%)의 의존도 또한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편이다.

지금은 가을이라서 그렇지만 앞으로 겨울이 다가오면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무기로 앞세워 유럽의 에너지 시장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러시아는 지난 6월 중순부터 가스관 터빈 반환 지연을 이유로 유럽으로 가스를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을 용량의 40%까지 축소했다.

더욱이 올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더 혹독한 겨울날씨가 예고되어 있어 유럽국가들은 벌써부터 러시아의 천연가스 장난질에 겁을 먹고 있다.그나마 기댈 곳은 미국 뿐이다. 미국은 천연가스 자급자족율이 100%에 달하고 있고 수출할 여력도 큰 편이어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주요 천연가스 수출창구였던 프리포트 LNG 수출시설이 지난 6월 화재사고로 폐쇄됨에 따라 현재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텍사스주에 있는 프리포트는 그동안 미국에서 수출된 모든 천연가스의 20%를 처리할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다.

프리포트는 당초 오는 10월에는 재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현재로선 재가동 시점이 연말 혹은 내년초로 다시 미뤄진 상태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으로부터 천연가스를 우회수출받을 여력이 대폭 줄어들어 유럽의 고통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북해산 브렌트유 등 석유가격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반면 10월 인도분 천연가스 선물가격이 최근 연고점을 경신하는 등 여전히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면 미국과 호주, 카타르 등이 대표적인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꼽힌다. 그러나 호주와 카타르만으로는 유럽 등 주요국가들의 천연가스 수요를 모두 충족하기가 어렵다. 미국이 프리포트 공장을 빨리 재가동하지 않으면 곧 닥쳐올 겨울은 유럽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섬뜩하게 들린다.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의 도박은 현재로선 성공 직전까지 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석유와 천연가스처럼 대체불가한 에너지 자원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전쟁에서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은 아마 미국도 몰랐을 것 같다.

뉴스임팩트 최진우 wltrbriant652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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