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울의 독일편지, 머나먼 땅 또 다른 시간 8편] 스타디움, 그곳은 어디인가

김서울 승인 2022.06.13 12:49 | 최종 수정 2022.08.04 20:01 의견 0
fc뮌헨의 축구장으로 들어가는 인파=김서울 기자


[뉴스임팩트=김서울 칼럼니스트]초창기의 스포츠 정신은 아마추어리즘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현대에 들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는 말 ‚아마추어’ 는 원래는 애호가, 즉 어떤 한 가지에 몰두하고 그것을 즐기며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에서 출발했다.

처음 올림픽이 열리고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할 때, 그들은 스포츠 선수들이 우승 함으로서 돈을 버는 것은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채택된 것이 아마추어리즘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 대해 아무도 그들의 직업행위를 비난하지 않는다. 현대의 스포츠는 프로페셔널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리즘이 순수히 스포츠를 즐긴다는 의미에서 언뜻 좋은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면 훈련과 경기 참여 등에 무보수로 임하여도 생계유지에 문제가 없는, 즉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사람 들만이 스포츠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들만의 리그’ 가 될 수 있다는 아마추어리즘의 크나큰 허점이 있다. 또 한가지는, 아마추어리즘 하에서는 스포츠 시장이 지금처럼 큰 시장이 될 수 없다. 선수들을 앞세워 상업 활동을 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리하여 아마추어리즘은 점차 자연스럽게 프로페셔널리즘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스포츠계의 ‚프로페셔널화’ 를 논하는 것은, 그리하여 현대에 와서 축구가 얼마나 매력적인 상품이 되었는지에 대해 그 근본 배경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특히 발달한 미디어 기술과, 현대의 시대 사조라고 까지 부를 수 있을 자본주의를 등에 업고 축구의 상업화는 더욱 활발히, 막대한 규모로 이루어졌다.

어느 유명 축구 선수가 대체 얼마나 큰 돈을 받고 다른 클럽으로 이적했는지는 요즈음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이야깃거리다. 얌전하고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축구 스타디움이다. 거대 기업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감성작용이 활발한 때를 노려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한 광고들을 내보낸다.

축구가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까닭에, 그런 광고들은 순식간에 전세계의 몇 백만에게 노출된다. 그리고 그들은 달뜬 마음으로 무엇이든 어느 때 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훌륭한 소비자들이다. 단지 전반과 후반 사이 중계가 멈추었을 때 나오는 광고들 뿐 아니라, 선수들이 입고 뛰는 유니폼을 어떤 기업에서 담당할 것인지, 공식 스폰서의 자리는 또 누가 채 갈 것인지,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선수는 어떤 제품의 홍보대사가 될 것인지 등 섬세하고 다양한 조정을 통해 기업들은 더욱 강력한 홍보 효과를 노린다.

이런 홍보 행위에서, 비단 기업 들만이 그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국가 역시 축구 경기를 통해 애국심을 홍보하고, 장려하고, 격양 시키려고 애를 쓴다. 또는, 정부의 치부를 감추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게끔 하는 강력한 환각제이자 마취제로서 이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가장 공감하기 쉬운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왜 한국 사람들은 한일전만 있으면, 평소에 축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가도 갑자기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뛰어나와 목청을 높이는가? 단순한 공놀이인 축구는 국가 간의 감정이 부딪히고 서로 겨루는 자리가 되었다. 또 다른 예시들을 들어보자.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은 독재자들은 저마다 한국의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본인들이다.

왜 그럴까? 그들은 국미들이 정치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들 3S 정책이라고 한다. Sport, Screen, Sex의 준말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빼앗는 오락거리들을 적극 장려하고, 사람들이 잠시 눈을 돌린 틈을 타 본인들의 뜻대로 나라를 움직였다.

스포츠는 당연 스럽게도 그 중에 하나로 포함 되어있다. 프로 축구 리그의 탄생에 전두환이 크게 기여했고, 전두환의 ‚상관’ 이었던 박정희는 태릉 선수촌을 만들고 한국 체대를 짓는 등 본격적으로 엘리트 스포츠 육성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세계적으로 프로 스포츠가 크게 유행하던 시기이니 그 흐름을 따라 한국을 홍보하고, 국가 경영에 도움이 되려는 의도가 더 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계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두 사람이 모두 독재자였다는 사실은 과연 의미심장하다.

이곳 독일의 역사에서도 이른바 ‚축구의 정치화‘, ‚스타디움의 정치공간화’ 가 발견된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재자들 중 하나일 히틀러가 그 장본인이다. 히틀러는 독일축구연맹(DFB)의 도움을 얻어 축구 경기를 나치의 프로파간다를 선전하는 계기로 적극 활용하였다.

경기 전에 진행되는 나치 단체들의 공연이며 이벤트, 당 소속 정치인들의 연설, 독일 제국에 대한 찬가 합창, 의무적인 나치식 경례 등 축구 경기 곳곳에 나치 정권을 홍보하는 요소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독일 연방 전체가 참여하는 경기인 ‚Bundespokal’은 ‚Hitlerpokal’로 이름이 바뀐 채 진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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