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울의 독일편지, 머나먼 땅 또 다른 시간 7편] 체육과 철학의 낯선 만남

Der Brief von Deutschland : Studium und Leben im Ausland

김서울 승인 2022.06.11 03:57 | 최종 수정 2022.10.17 21:56 의견 0
fc뮌헨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김서울 칼럼니스트

[뉴스임팩트=김서울 칼럼니스트]'체육 철학’ 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실로 철학이 모든 학문의 뿌리와도 같은 까닭에,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영역에서 철학적 사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체육 철학, 공학 철학 등 낯선 조합들이 정말 많다. 그 중에서도, 왜 ‚체육’ 과 ‚철학’ 이라는 단어가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한지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선 스포츠는 몸과 몸의 움직임에, 더 나아가서는 서로 다른 몸들이 더 높은 점수를 얻으려고 경쟁하는 데에 그 존재 근거를 가진다. 즉, 사고 능력을 이용해, 인간 생활의 무수한 요소들을 검토하고 해석하는 철학과는 어찌 보면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듯 보인다. 흔히 철학은 답이 존재하지 않는 학문이라고 한다.

관습적인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척도를 벗어나 자유롭고 도전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의 작업장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츠는 하나의 놀이로, 정해진 규칙이 있고 더 훌륭하거나 덜 빼어난 선수가 그에 따라 정해진다.

허나 스포츠의 역사는 거진 인간의 역사만큼 길다. 그 종류의 다양성, 파생되는 산업이나 팬 문화 등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것들까지 모두 따져보면 인간의 문화를 다룰 때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 된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도 던져볼 수 있다. 인간은 왜 스포츠를 즐기는가? 스포츠가 프로페셔널리즘의 영역에 들어선 요즘, 스포츠 선수는 하나의 유망한 직업이다.

그러나 스포츠가 처음부터 프로 스포츠의 형태로 존재했겠는가? 아니다. 스포츠는 애초에 놀이였고, 정확히 그 시작을 짚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인간의 본능적 활동이었다. 반대로 보자. 스포츠가 왜 ‚프로페셔널’ 한 것이 되었겠는가? 왜 수십에서 수백억이 오가는 커다란 시장이 되었는가?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사회에서도 왜 사람들은 고작 여럿이 모여 약 90분간공을 차대는 놀이에 정신을 놓고 열광하는가?

그것은 도리어, 현대 사회가 너무도 빨리 ‚현대화’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원시에 대한 강렬한 향수가 있다. 뛰고, 제치고, 날것의 냄새를 맡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것들은 일상 생활에서 찾아지기 어렵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은 나날이 간편해지고 평이 해졌다. 인간의 사고는 그렇게, 지난 것들을 훌쩍 제치고 낯선 곳에 이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 낯선 ‚안전함 ’에 인간은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저 깊은 곳에 원시적 욕망은 풀리지 않는 갈증으로 남아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스포츠의 존재 이유이다. 몸을 움직여 적을 압도하고, 가장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자가 명예와 재물을 얻는 것. 사냥이나 전쟁과 같은 활동들의 안전하고 세련된 형태가 바로 스포츠인 것이다.

때문에 스포츠는 충분히 철학이 다룰 만한 주제이다. 그 움직임들 자체에 대해서나, 파생되는 것들에 대해서나, 스포츠 일반의 정체, 스포츠를 통해 인간이 얻고자 하는 것 모두에 대해 철학은 할 말이 있다. 스포츠를 향한 욕구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과 직접 맞닿아 있는 것이며, 그런 까닭에 인간의 역사 내내 함께하며 하나의 결정적인 문화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스포츠 중에서도 내가 오늘 다룰 종목은 축구이다.2020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가장 많은 자본을 낳는 스포츠 종목은 축구이다. 그 다음으로 뒤 따르는 것은 미식축구인데, 미식축구 역시 축구에서 파생된 형태라는 점에서 이 통계는 눈 여겨볼 만 하다. 왜 전 세계인들은 이토록 축구를 사랑할까?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단순성, 평등성, 예측 불가능성, 역동성을 그 이유로 든다.

배구, 야구 등의 다른 팀 스포츠와 비교해 보았을 때 축구의 규칙은 훨씬 단순하다. 오프사이드 규칙을 제외하면 그다지 어려울 만한 것이 없다. 이것이 축구의 단순성이다. 누구든 규칙을 간단히 이해하고 그에 참여할 수 있다. 또, 키와 같은 신체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농구 등과는 달리,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큰 키, 커다란 몸집이 결정적이지 않다. 작은 몸집에 작은 키로도 뛰어난 기량을 뽐내는 선수들이 많다. 축구의 평등성이다. 단순성과 평등성, 이 두 가지 특성들은 축구에의 직 간접적 참여를 수월하게 한다. 나머지 두 성질들은 조금 더 긍정적인, 혹은 능동적인 속성들이다. 이 특성들은 축구에의 참여를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이끈다.

첫째로 예측 불가능성은 말 그대로 축구의 승패가 쉽게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리 강한 팀과 약한 팀이 맞붙었어도 좀처럼 승패를 단언할 수 없는 것이 축구의 세계이다. 선수들의 컨디션,개별 능력, 조직력, 감독의 지도력 등, 물론 때때로는 기막힌 행운 또는 불운의 개입과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되어 그 승패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역동성이다. 축구만큼 넓은 공간 전체를 90분의 경기 내내 한 번의 휴지를 제외하고는 전부 사용하는 그런 팀 스포츠는 없다. 이를테면 야구는 휴지가 잦고, 축구만큼 이동이 많이 요구되지 않는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면, 배구는 실내에서 진행되고, 공간을 작게 쓸 뿐더러 가운데에 네트가 있어 각 팀은 정해진 공간만을 쓸 수 있다. 얌전하고 지루한 현대의 사회에서 축구가 가진 이런 특징들은 많은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을 만 하다.

그렇다면 이런 축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가장 인기있는 팀 스포츠인 만큼 그 역사도 길까? 그렇지 않다. 물론, 공을 발로 차는 축구와 유사한 이른바 원형의 놀이들은 세계 곳곳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형태의 현대 축구가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현대 축구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영국 하층민들의 스포츠로 추정된다.

이 시기 축구는 공을 차는 단순한 형태로 통일된 규율이나 규칙이 존재하지 않았고 경기 도중 폭력적인 상황으로 쉽게 변화하고는 하였다.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이르며, 비좁은 도시에서 공업에 종사 해야 했던 그들은 더 이상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시공간상의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고 한다.

그러나 축구를 즐기는 문화는 중단되지 않았고, 사립학교 학생들의 놀이로 변모하며 하나의 체계적으로 정립된 규칙을 갖게 되었다. 이른바 '케임브리지 규칙' 이다. 이 규칙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가다듬어지고,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형태의 축구 규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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