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울의 독일편지, 머나먼 땅 또 다른 시간(4편)

한국어로 ‘공손하게 말하기’, 왜 이렇게 어려울까?

김서울 승인 2022.04.15 10:42 | 최종 수정 2022.04.18 09:50 의견 0
뮌헨의 봄눈=김서울


[뉴스임팩트=김서울 칼럼니스트]필자는 현재 철학을 공부하고자 독일 뮌헨에 있다. 하고자 하는 일, 바라는 세상을 찾고 이루어 나가고자 외국에서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 안다. 독일에서의 공부, 생활, 그리고 느껴진 것들을 잔잔히 들려주는 이 코너를 통해 나는 나와 같은 처지인 이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그렇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잠깐의 환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세계가 대지에서 밀려나옴을, 또한 대지로 축적되어감을 이야기했다. 다른 땅, 다른 환경, 다른 문화와 사람들, 그러나 여전히 ‘사람의 세계’ 인 이곳에서, 나는 새롭고도 익숙한 말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접속법 2식이다. 접속법 2식을 쓰면 직설을 피함으로써 상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공손을 실현할 수 있다. 접속법 2식의 다른 기능들은 추측,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바람 등의 의미를 덧붙이는 데에 있다.

즉, 무언가 에둘러 말하는 듯한 뉘앙스를 준다. 때문에 접속법 2식의 한 의미로 공손(Höflichkeit)이 있는 것이다. 한국어에서도 이런 말하기를 흔히 볼 수 있다. ~인 것 같아요. ~하시면 어떨까요? 와 같은 직접적인 말하기를 피하는 방식은 ~에요, ~할래요/~하세요 와 같은 표현들 에서 보다 공손한 느낌을 준다. 특히 -하십쇼, -해요 체 등의 높임 표현을 쓰는 상대에게 명령법은 곧이곧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신 제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교수가 학생에게 “지난 번 진도가 어디까지 였지?” 할 때, “394페이지 까지 였습니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밖에 비가 오나?”고 물었을 때 “예. 비가 옵니다.”하는 것은 조금 어색하다. “예. 지금 (비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마땅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시험 범위 어디까지로 할까?”라는 질문에 “오늘 배운 것 까지로 하시는 게 좋습니다” 내지는 “오늘 배운 것 까지로 하십시오” 등의 대답을 하는 것은 확실히 무례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대신 학생들은 주로 “오늘 배운 것 까지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등의 대답을 한다. ~하시지요 의 제안 표현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

또, 한국어와 독일어 모두에서 이런 표현이 존대하는 상대나 Sitzen하는 상대에게만 쓰이지는 않는다. 반말을 하면서도 ~인 것 같다고 말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Du würdest(접속법 2식 동사)~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내가 “지금 비가 와. 너 그렇게 입고 안 추워?”고 하지 않고 “지금 비가 오는 것 같아. 너 그렇게 입으면 춥지 않을까?“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너에 대해 공손한 말하기를 한 것이다. 후자가 훨씬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는 것은 한국어 화자라면 누구든 알 수 있을 것이다. 부탁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차이가 명료하다. “저거 좀 줘.”보다 “혹시 저것 좀 줄 수 있을까?”가 훨씬 예의 바르게 들린다.

마지막으로 불변화사이다.
독일어는 불변화사 사용이 풍부한 언어이다. 불변화사란 성, 수, 격에 따라 변하지도 않고(굴절하지 않고), 문장 혹은 단어끼리 접속시키는 접속사 역할도 하지 않는 독특한 성분이다. 그러나 이 불변화사의 사용이 문장의 뉘앙스를 크게 변화시킨다.

doch, mal, nur등 불변화사를 덧붙임으로써 좀 더 친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무례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Kommt doch herein!”(들어와!)가 “Kommt herein!”(안으로 와!) 보다, “Sag mir mal das!”(그거 좀 말해줘!)가 “Sag mir das!”(그거 나한테 말해!)보다 부드럽게 들린다.

최대한 뉘앙스를 살려 번역해보았지만, 마치 한국어의 높임법처럼 불변화사는 독일어를 대표하는 고유한 특성이다. 때문에 모국어 화자가 아닌 나로서는 그 미묘한 느낌을 잡아내기가 정말 어렵다. 발화의 상황, 맥락, 목소리의 높낮이 등에 따라 똑같은 문장도 다른 뉘앙스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다. 지금은 doch와 mal 두 가지만을 가지고 예시를 들었지만 실제로 그 종류는 훨씬 다양하다.

또, 가장 먼저 한국어 높임법과 비교한 du/Sie의 구분은 심지어 하나의 언어 규칙으로 정착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개념이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을 필두로 19세기 시민혁명, 그리고 1968년의 68운동(유럽의 학생운동)을 거쳐 비로소 du-Sie 대립이 일반 규칙으로 자리잡았다. 9세기 전까지는 du(you)만이, 9세기 부터는 ihr(you-복수의 의미로)가 왕족이나 성직자와 같은 사회적 지배 계급에 대한 호칭으로 쓰였다. 일반 서민들의 호칭은 여전히 ‘du’였다. 수월히 비교되지는 않는다고 전술 했으나, 이는 한글이 창제된 때의 중세 문헌을 들여다보아도 경어법을 발견할 수 있는 한국어와는 분명 다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라면, 내가 독일어 구두 시험 준비를 할 때의 일이다. 그 때 내 말하기에서 종종 지적되었던 것 중 하나가 ‘unser-(우리의-)’의 사용이다. 예를 들어 ‘in unserem Land’고 하면 어색한 발화가 된다. 직역하면 ‘우리나라에서’ 가 될 텐데, 한국어로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독일어로는 ‘in meinem Land’가 정문이다. ‘내 나라에서’, 한국어로 말하기에는 먼저 것 보다 어색하다.

작년에 대학에서 서양 지성사 강의를 들었을 때의 에피소드도 있다. 강의를 시작하며, 서양과 한국의 차이점으로 흥미를 끌기 위해 언급된 예시가 기억에 남는다. 한국 사람은 곧 죽어도 ‘사람 살려’ 하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help me’한다는 것. ‘사람’ 이 ‘나’ 대신 주어로 사용되는 것이다.

교수님은 그 차이의 근본 원인으로 한국의 집단주의와 서양의 개인주의를 드셨지만, 해석은 학자마다 다양하다. ‘우리’ 가 ‘나’ 의 공손한 표현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다. 언어라는 복잡한 사회 현상이 단 한가지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은 오히려 이상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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