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뉴스임팩트=최준영 대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통해 평화 중재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는 구상이 헝크러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알래스카 정상회담 이후 상황은 오히려 복잡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휴전을 건너뛰고 곧장 종전으로 직행하자는 트럼프의 과감한 접근은 러시아의 전략적 계산, 우크라이나의 난감한 처지, 유럽과 미국 내 회의론이 맞물리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노벨평화상을 염두에 둔 듯한 트럼프의 정치적 야심은 푸틴의 노련한 협상술에 휘둘리는 모양새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두른 트럼프의 ‘종전 직행론’

트럼프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푸틴과 회담한 뒤 “휴전이 아닌 전쟁 종식으로 곧장 가야 한다”며 종전 구상을 공개적으로 내세웠다. SNS 트루스소셜에는 “휴전 협정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평화 협정으로 직통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담 일정을 서둘러 발표하며, 22일까지 미·러·우크라이나 3자 정상회담을 열어 종전 조건을 확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내놓았다.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트럼프는 이번 구상을 노벨상을 겨냥한 정치적 유산으로 삼으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종전 직행론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고, 푸틴의 요구는 사실상 우크라이나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의 전략적 계산

푸틴의 최우선 목표는 ‘영토 확정’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푸틴은 도네츠크·루한스크 전역에서 우크라이나가 철수하는 조건으로 전선을 동결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아직 우크라이나가 통제 중인 지역까지 내놓아야 휴전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이 평화 협정 체결 시 서방 군대의 우크라이나 주둔을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고 전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막되, ‘대체 안보 보장’을 명분 삼아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를 강요하는 협상술로 풀이된다.

군사 전문매체 디펜스 뉴스는 “푸틴은 휴전으로 제재를 피하고, 전선을 고착화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전쟁 지속의 자유까지 확보했다”며 “실질적 승자는 푸틴”이라고 분석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른 종전 논의가 러시아에 유리한 판을 깔아준 셈이라는 비판이다.

젤렌스키의 딜레마

가장 난처한 이는 젤렌스키다. 그는 그간 △무조건 휴전 반대 △일방적 영토 포기 불가 △안보 보장 필수라는 3대 원칙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회담 직후 “우크라이나 영토 교환 논의가 있었다”고 폭로하며 젤렌스키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군사적으로 열세에 몰려 있으며, 서방의 군사 지원에도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러시아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국가의 지도자가 미국의 졸속 평화안 실패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미묘한 태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 정상들은 공동성명에서 트럼프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했지만, 정작 휴전→협상→종전이라는 기존 단계론을 배제하고 종전 직행론을 지지하는 내용은 빠졌다. 이는 트럼프의 구상에 일정 부분 동조하면서도, 푸틴의 전략적 의도에 말려들 위험을 경계한 행보로 해석된다.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고 싶지만, 불완전한 종전 합의가 오히려 장기 불안정을 낳을 것을 우려한다”며 “한반도식 ‘영구 분단’ 시나리오가 유럽 동부에서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구상의 한계

트럼프의 종전 구상이 헝클어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과도한 조급함이다. 트럼프는 정치적 성과를 노벨상급 업적으로 포장하려 했다. 그러나 전쟁 종식은 단기간 이벤트가 아닌 복잡한 군사·외교·안보 이해관계의 산물이다. 둘째, 협상력의 불균형이다. 푸틴은 전선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확보한 상태에서 협상장에 나왔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소극적 선택지밖에 없었고, 미국은 중재자라기보다 ‘조정자’에 머물렀다.

셋째는 우크라이나 배제 논란이다. 당사자인 젤렌스키의 원칙적 입장이 무시되면서, 트럼프의 평화안은 ‘미·러 합의 강요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트럼프는 푸틴에게 추가 제재를 지연시킬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라며 “이번 회담의 승자는 푸틴, 패자는 젤렌스키”라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