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수준인 'Aaa'에서 한 단계 낮은 'Aa1'으로 강등하면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세계 3대 신용평가사 모두로부터 ‘트리플A’ 등급을 상실한 국가가 됐다.
이번 조치는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재정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 부재와 구조적 적자 문제를 더는 무시할 수 없다는 무디스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미국은 세계 금융시스템의 중심이자, 미 국채는 ‘무위험 자산’으로 여겨지는 만큼,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은 국제 금융시장에 잠재적 파장을 예고하는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무조건 안전한 자산이 아니다”=전 미국 재무장관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래리 서머스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무디스의 경고는 단지 신용등급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정치 시스템의 재정 운용 능력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회가 반복적으로 부채한도 협상에서 정치적 인질극을 벌이고, 적자 재정에 대한 초당적 해결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실제 등급 강등의 충격은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달러 패권에 기대 국가 신용을 당연시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맥스 고크먼 프랭클린템플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번 무디스의 조치는 미국이 더 이상 무제한 지출을 계속할 수 없다는 신호”라며, “채권 투자자들은 점진적으로 자산을 유로화, 프랑화 채권이나 금과 같은 대체 안전자산으로 이동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의 경고 “미국은 강하지만, 더 이상 예외는 아냐”=무디스는 이번 강등의 배경으로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가 유사 등급 국가 대비 과도하게 증가한 점을 지적했다.
2024년 기준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6.4%에 달하며, 2035년까지 9%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같은 기간 연방정부 부채 비율도 134%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의 규모와 유동성, 기축통화국 지위는 여전히 강력하나, 이 같은 경제적 장점도 재정 악화를 상쇄하지 못하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카르멘 라인하트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하버드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즈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미국이 이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무위험 자산’을 제공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명제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며 “무디스의 판단은 미국의 국채 시장 안정성과 신뢰에 대한 구조적 경고”라고 해석했다.
그녀는 “재정 건전성 회복 없이 고금리가 지속되면, 국채 수요가 둔화되고 이자 비용이 국가 재정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채 한계선에 가까워지는 미국=국채 금리 상승은 연준의 금리 정책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맥스 고크먼 CIO는 “높은 금리는 결국 민간 투자 위축, 주식시장 조정, 달러화 약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강등 직후 급등세를 보였고, 달러화는 유로·엔화 대비 소폭 하락했다. 다만 뚜렷한 ‘투매’는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정점 신호와 맞물릴 경우 신용등급 강등 효과는 희석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국채는 각국 중앙은행과 연기금이 보유한 대표적 외화자산이다. 특히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중앙은행은 미 국채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 중이다. 한 외국계 은행의 아시아 리서치 책임자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자산운용사들의 자산 포트폴리오 재조정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며 “미국이 아닌 다른 선진국 국채나 금, 암호화폐로 자산이 일부 이동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무디스의 강등 조치는 단순한 숫자 변경이 아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가진 재정지속성에 대한 신뢰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번 강등은 미국 정치권에 구조적 재정개혁을 요구하는 경고음”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