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과 현재 고현 시내 전경 대비 사진@김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차디찬 겨울 아침 공기를 탓하지도 말아야 하고 오로지 엄숙하고도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둘러보아야 할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시린 조형물을 보기 전, 복잡하게 아픈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 일단 조성된 나무들부터 본다는 게 과연 예의 바른 행동인지 모순을 감내하면서도 기어코 행한다. 그곳에는 중부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들이 야생으로 분투하기에.
그렇다고 남부지방 나무로만 가득하지 않은 남쪽 땅, 모르는 나무보다 아는 듯한 많은 나무들이 오래된 상처를 어떻게든 보듬고 있는 상흔 어린 곳을 중간쯤 지날 무렵 한참 머물게 하는 설치물이 있었다. 1951년 고현 시내 전경과 현재 고현 시내 전경을 대비시키는 사진이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포로수용소 당시와 오늘의 모습 : 인천상륙작전 이후 생포된 많은 수의 포로는 1951년 2월부터 고현, 수월 지구를 중심으로 새로 조성된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앞에 보이는 시내의 현재 모습을 과거 포로수용소가 자리 잡았던 당시의 고현 전경 사진과 함께 비교해 보면 발전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여기서 오래 생각을 하게 한 문구는 ‘발전된 모습’이었다. 초가집에서 아파트가 들어선 게 발전이라고 보았겠지만, 그것도 물론 발전이지만, 민둥산에서 수목 가득한 푸른 산으로 바뀐 것도 발전이다.
남부지방에서만 보는 멀구슬나무@김서정작가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이미 1.5도를 넘겨 기후재앙을 코앞에 둔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녹지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게 우리가 살기 위해 만들어가는 발전된 모습이다. 그렇게 볼 때 산업화도 산업화이지만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자연 파괴의 주범인지 한국전쟁 당시 산하와 지금의 산하를 비교해 보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다.
실질적으로 거제도에서는 전쟁 수준의 전투가 벌어진 적이 없고,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수용소 내 유혈사태만이 낭자했는데, 어떻게 푸른 산이 벌거벗게 되었을까? 당시를 산 분들의 증언을 보니, 주민 10만 명의 거제도에 피란민 10만 명이 함께 거주하게 되면서 계룡산 산비탈에 움막이 들어서게 되었단다. 산에 가득한 소나무 가지들을 가져다가 흙집을 짓고 사는데, 가까스로 얻은 밀가루 같은 배급품을 음식으로 만들기 위해 땔감이 필요했단다.
한 마디로 “나무가 절단났어요”라는 말로 끝나면 좋겠지만, 100년을 사는 사람과 생명 주기가 다른 나무들이 우거지려면 긴 세월이 요구되는 법, 그만큼 인간과 나무가 거주하는 지구로서는 큰 생채기를 입은 셈이다. 물론 사람이 먼저라는 당위에 반기 같은 건 없지만, 생존지수가 높아진 만큼 전쟁이 가져다준 자연 파괴에 모두가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를 보면, “기후-생태위기와 불평등-인권악화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으로 맞물린다. 세계 인권학계는 환경과 인간의 심층적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에코사이드(생태살해)와, 인간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집단살해)가 그물망처럼 연계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라는 글이 나온다.
이유와 명분이 어떻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전쟁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숲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슬 관계로 살아가는 숱한 생명들이 무지막지하게 죽어나간다는 걸 같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쟁이 생물다양성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2023년 2월 영국 일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1년간 전쟁의 결과로 32만104개의 폭발물 충격을 견뎌야 했단다. 그 결과 자연 보전지 106곳, 습지 16곳, 생물권 2곳 등이 파괴 위험에 처했고, 동물 600종과 식물 880종이 멸종 위기에 직면했단다. 여기에 전차 연료 소비, 탄약 제조 및 발사, 콘크리트 요새 건설 등과 같은 군사활동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방출량까지 언급하면, 오늘날의 전쟁은 이전의 전쟁과 그 영향력이 너무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진@김서정 작가
과거 베트남전이나 걸프전에서는 환경 피해 평가를 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번 평가를 통해 러시아가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건 물론 생태계 파괴 범죄도 저지른다는 걸 알리고 있다. 이걸 우크라이나의 선전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가디언은 전쟁으로 파괴된 자연의 가치를 일깨우는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사람이 살아야 하나 숲이 살아야 하는 문제를 떠나, 여기서 살아야 하나, 저기서 살아야 하나,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발적 의지로 또는 비자발적 의지로 미래를 선택해야 했던 전쟁포로들, 그 가혹한 고뇌를 지켜봤을 나무들이 있을 법해 주위를 둘러보다 발아래를 보니 은행알 같은 열매가 떨어져 있다. 주워 보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쭈글쭈글 껍질을 찢어 보니 은행알은 아니다. 다시 고개를 들고 사방을 보니 방금 지나온 곳에 키 큰 나무가 있고, 가지 끝에 노란빛 열매를 덕지덕지 달고 있는 모습에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이 나온다.
남부지방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멀구슬나무는 네팔, 인도, 말레이반도가 원산지라고 하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자생한 것인지 도입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겨울에도 열매를 달고 있는 이 나무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이 새들이 과즙만 먹고 다른 곳에 씨를 퍼뜨려서 제주도 등에서는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야생의 나무이다. 작고 귀여운 열매를 보기 힘든 중부지방과 달리 한겨울에도 색감 있는 열매를 볼 수 있는 멀구슬나무의 이름 유래는 여러 가지다. 열매가 말똥과 닮은 구슬 모양이라서, 제주도에 머쿠슬낭, 먹쿠슬낭이란 말이 있어서, 염주로 만들어 쓸 수 있는 열매가 구슬 같아서, 말을 타고 다닐 때 말의 목에 달린 구슬을 닮아서 등등인데 공통적으로 구슬이 들어간다.
거제도에 포로수용소를 만든 이유 중 하나가 겨울에 얼어 죽을 염려가 없어서라고 하는데, 이곳 새들은 은행과 달리 독성이 강해 사람이 못 먹는 멀구슬나무가 있어 굶어 죽을 확률이 적을까? 그래서 더 크게 눈을 뜨고 멀구슬나무를 찾는데,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높고 크게 자란 소나무들과 참나무들만이 눈에 가득하다.
아쉽기만 해 굳이 지나온 길에서 본 후박나무, 동백나무, 종가시나무에 열매가 혹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커다란 철모 안에 전시된 포로사상대립관에 들어가 본다.사상 대립의 종국이 왜 꼭 누군가의 육체적 종말이 되어야 하는지, 이제는 제발 그런 바람을 갖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간곡히 바라며 밖으로 나와 야외에 전시된 비행기 옆을 본다. 거기에 하얀 겨울 꽃을 소담스럽게 피우고 있는 아열대 식물 팔손이가 있다.
팔손이는 두릅나무과 상록 관목으로 양손을 합해 놓은 것 정도의 잎이 대개 여덟 갈래로 갈라져 있다. 그래서 팔손이라고 부르는데,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외국 식물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자생식물이다.
팔손이 관련 이야기는 인도에 전해져 온다. 17세의 인도 공주가 생일에 어머니한테 쌍가락지를 선물로 받았다. 그걸 본 시녀가 공주 방을 청소하다가 엄지에 끼어봤는데, 빠지지 않았다. 쌍가락지를 찾는 소동이 벌어졌고, 도둑으로 몰릴 것 같은 시녀는 엄지를 구부리고 여덟 개의 손가락만 펴 보였다. 바로 그때 하늘이 노해 시녀를 나무로 변하게 했는데, 그게 바로 팔손이다.
여기서 멀구슬나무, 팔손이, 인도, 중립국 인도로 간 포로들이 연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나무 도감에 등장하는 나무들의 자생지 기록, 고향이란 자생지를 떠나도 버려지지 않는 기억들에서 존재들의 삶이란 어찌 보면 고통이란 걸 떠올릴 수 있을까? 지구에 가장 극심한 고통을 주는 정점의 존재는 전쟁을 하는 인간 종(種)이란 슬픈 현실에 닻을 내릴 수 있을까? 무겁게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나와 길을 걷다 옆을 보니 철조망 넘어 안에서 못 본 커다란 멀구슬나무 두 그루가 화들짝 다가온다. 보려면 보이는구나. 고통에 위로를 주었을 생명의 나무들이!
[김서정 작가 소개]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