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시각]관계(關係)

이장호 승인 2024.09.28 00:00 의견 0
사진@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장호 전 정훈병과 중령]인생을 정의하거나 표현하는 단어 중에서 나는 관계(關係)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가 시작되고 평생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끊고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시작되어 형제, 손자 등의 관계가 자동으로 생성되는 이치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그가 속한 사회에서 친구, 이웃 등이 생기고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존재가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고 아울러 나쁜 관계는 안 맺으려고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관계가 쉽지 않은 것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관계는 상호성이 강하기 때문에 일방의 노력과 정성으로는 좋은 관계가 형성되거나 유지되기 어렵다. 따라서 관계를 맺은 모든 구성원의 노력과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고 오래 유지되는 이치다.

요즘의 MZ세대는 기존의 세대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전의 X세대, 신세대가 기존 세대와의 차별성이 강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은 이유와 같다. MZ세대의 특성 중에 하나가 관계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세대가 해 왔던 기존의 관계 형성와 유지를 위한 방법 대신 언어적 관계가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자신을 나타내는 표현의 방법이 유사해야 공유의 개념이 생긴다고 한다. 말하는 방법이나 쓰기 표현이 기존 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을 가장 쉽게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곳이 군대라고 생각한다. 같은 또래의 MZ 병사들로 구성된 다수의 인원들이 공동의 생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그들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다. 군대가 보수적이고 엄격하며 사회적 현상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요즘의 군대는 많이 개방되고 여유가 있으며 사회 요구를 상당히 반영한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군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의 군대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변화되었다.

요즘 군대에서 동기 생활관과 휴대전화 사용, 얼차려 금지 등만 예를 들어도 상상을 초월하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지금의 병사들은 너무나 당연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요즘 병사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한다. 지휘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병사들이 개성이 강한 특성상 같은 공간에서 남과 함께 지내는 생활이 일단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의 생활이 가장 힘들다는 고충을 얘기한다. 과거보다 적은 7~8명이 생활하는 공간에서조차 서로의 존재와 관계가 수월하지 않게 여겨진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단체생활이나 규칙에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의 특성인 개성이 더욱 발현되어 스스로 선택한 고관계가 아니면 상당히 불편해하고 회피하려는 성향이 나타난다.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부모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부탁(?)이 자기 아들을 간섭하지 말고 생활관을 조정해달라는 전화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군대에 와서 만나 맺은 관계가 불편하면 그것을 극복하거나 노력으로 전환하는 노력보다는 일단 회피하려는 이기적인 의사를 표현해서 지휘관으로서는 고충이 심하다고 한다. 모든 병사들을 만족시키는 해법이 없어 최선을 다해도 누군가는 불평을 해서 머리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다.

군대라는 특성이 전국의 또래 청년들은 모아서 국가방위라는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어서 예전부터 사람과의 관계가 상당히 힘들었다. 과거 구타나 폭행 등이 자행되었던 배경에도 관계 문제가 가장 컷을 것이다. 좋은 관계가 아니다보니 계급을 이용한 악습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런 문제에 대한 군의 의식도 부족했고 해결방법도 효과적이지 못했던 우리 군대의 과거 수치스러운 면모였다.

요즘 군대는 그래도 나아졌다. 부대별로 상담관도 있고, 의사소통 채널도 다양해 병사들의 고민은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군대에 온 병사들이 가장 근원적으로 서로의 관계 문제로 고충이 많다는 것이다.

개성이 강한 많은 병사들의 요구에 맞출 수 없는 상황이고, 지휘관과 참모들도 이 문제의 전문가도 아니고, 특별한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분께 여쭤보니 이 문제는 결국 현장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관계는 그냥 방치하면 그 상태로 굳어버리기 때문에 유동성을 강화해야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군대는 그리 활동적이지는 않다. 부대 훈련도, 체육 활동도, 종교 활동도 적어졌고, 유가 시간도 활동적이지 않고 정적이다. 개인 시간이 많고 전체나 단체가 함께하는 시간이 적다보나 관계를 맺고 발전시키는 시간이 적어진다. 어제 군 부대 행사가 있어 방문했을 때도 한참 훈련이나 활동할 시간인데도 부대가 너무 조용해서 놀랐다. 다들 생활관에서 뭔가를 하고는 있었지만 분주한 분위기도 아니고, 차분한 모습이 군대 같지 않았다.

전통적인 군대라는 특성이 많이 사라지는 요즘 추세라고는 하지만, 군복을 입은 군인의 특성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이나 활동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군인이라면 땀 흘려 훈련하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격려하고 응원하는 생동감 있는 모습까지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아닌 전체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관계를 발전하는 경험을 군에서 해야 한다. 군대를 마치면 이제 사회로 나와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활짝 필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살아갈 자산을 군에서 배워가야 한다. 사회도 원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며,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군대에서 사전 경험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와 환경이 변해도 군대는 군대로서의 특성을 유지하고 그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병사들이 힘들어하는 관계 문제에 대해 작은 부대 단위부터 고민하고 노력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그저 있다가 가는 간이역이 아니라 군이 인생의 큰 가르침과 경험을 주는 곳이 되어야 군이 살아남는다.

군에서 지휘관도 간부도 중요하지만, 근간은 병사다. 병사들의 고충을 해결하고 올바른 역할을 하는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보완과 노력이 절실하다. 병사들이 누구와 어떻게 지내면서 무엇을 고민하는지 자세히 살피고 도와줘야 군대다운 군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더 이상 군대가 가기 싫고 두렵고 생각하기 싫은 존재에서 벗어나려면 지금의 상태로는 어림도 없다. 국가에서 때 되면 알아서 월급 준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글쓴이 이장호 중령]

1990년 육군사관학교 46기로 졸업해 정훈장교로 30여 년간 복무했다. 고려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음. 앙골라UN평화유지군 파병 등 3회의 해외 파병과 미국 공보학교 졸업, 20여 회의 외국 업무 경험 등 군 생활을 통해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쌓아 군 업무에 활용해 나름 병과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며 전역 후 군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애정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현재는 기자, 요양보호사 등의 일을 하며 우리 사회의 생활상에 대해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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