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박종국기자] “보잉이 아니면,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했던 보잉이 끝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 주가하락에 노조파업까지 잇단 악재=올들어 뉴욕증시 훈풍에 힘입어 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 나스닥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와중에도 보잉 주가는 연초 대비 35% 하락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보잉 노조는 4년간 임금 25% 인상, 퇴직 수당 상향 등을 담은 노사 합의안을 거부하고 16년만에 파업에 돌입하는 등 보잉을 둘러싼 위기 경보는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보잉 최대노조인 국제기계항공노동자연맹(IAM) 751지부는 지난 8일 노사가 합의한 '4년간 임금을 25% 인상안' 조합원 추인 투표에서 94.6%가 거부 의사를 밝히며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보잉은 이미 항공이 품질 관리 실패와 납기 지연 등으로 인해 위기에 몰린 상황인데, 파업까지 겹치면서 올해 실적은 물 건너갔다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얼핏 노사가 합의했던 4년간 25% 임금인상은 괜찮은 제안으로 보이지만, 노조는 당초 4년간 임금 40% 인상을 요구했던 터라 25% 인상안에 만족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합의안에는 임금 인상 외에도 퇴직 수당 인상, 의료 비용 절감, 보잉의 차기 상업용 항공기를 미 북서부 연안 일대 공장에서 제조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으나 조합원들은 단칼에 합의안을 거절했다.
보잉 노조의 파업돌입으로 인해 보잉은 여객기 생산 지연 등 생산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2008년 보잉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을 당시 한 달 손실액이 15억달러(약 2조원)에 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는 그 이상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 맥스 기종의 갑작스런 추락이 불러온 재앙의 시작= 보잉의 추락은 2018년 보잉의 차세대 민항기 737 맥스 기종의 갑작스런 추락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와 에디오피아 항공에 납품된 보잉 737 맥스가 별다른 이유없이 이륙 직후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초대형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1916년 윌리엄 보잉이 설립한 보잉은 2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항공업계의 기린아로 우뚝 섰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서 전설의 폭격기로 꼽히는 B17, B29, B47 등 B시리즈 군항기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전쟁의 판도를 바꾼 회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전쟁이후에는 한때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경쟁에서 밀리기도 했지만,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보잉 707을 비롯해 727, 737, 747, 777 등 보잉시리즈를 선보이며 글로벌 민항기 시대를 연 최고의 항공사로 거듭났다.
1997년 영원한 경쟁사로 자리매김했던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은 보잉의 앞날에 날개를 달아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2018년, 2019년 야심차게 선보인 맥스 기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연쇄적으로 2대가 잇따라 추락하면서 보잉은 안에서 곪았던 상처가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보잉은 기술적 결함을 갖고 있는 737 맥스를 항공사에 판 것도 모자라, 항공사에는 737 맥스에 새로운 장치(MCAS)가 탑재되어 있다는 사실마저 숨기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새로운 장치가 탑재될 경우 의무적으로 항공기 조종사들에 대해 실시해야 하는 훈련비용을 아끼기 위해 은닉했다는 사실이 미국 의회 조사결과 드러났다.
◇ 기술자 우대문화가 사라진 보잉= 설립 초기부터 기술자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우대했던 보잉의 문화는 1997년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보잉 경영자들은 월스트리트가 요구하는 주가상승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보잉과 더글라스와의 합병은 보잉이 위기에 빠진 더글라스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지만, 합병 후 경영진은 더글라스 출신들로 채워지면서 기존의 기술 우대 문화는 철저하게 무시됐던 것이다.
보잉은 회사가치를 키우기 위해 철저하게 효율성에 기반한 경영전략을 펼쳤고, 이는 비용절감, 이익 극대화라는 새로운 목표달성을 위해 기존에 보잉이 고수했던 기술완벽주의를 희생시키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이익극대화 전략에 힘입어 보잉의 주가는 한때 500달러 근처까지 치솟았지만, 안전을 담보로 한 이런 무서운 경영전략은 각종 기술적 결함과 항공기 사고가 잇따르면서 지금은 시장에서 신뢰성을 잃었다는 평가다.
특히 보잉은 올해 기체 결함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이어지면서 지난 2분기 14억4000만달러(약 1조9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우주선 사업 부문에서도 스타라이너 우주선에 결함이 잇따르면서 경쟁사 스페이스X에 잇따라 임무를 빼앗겼다.
보잉은 최근 수년간 CEO가 계속 교체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맥스 기종 추락사고 당시 CEO를 맡았던 데니스 뮬렌버그가 사퇴하고 데이브 캘훈이 CEO 바통을 이었지만 지난 3월 항공기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는데, 후임으로 취임한 켈리 오트버그는 난국을 수습하기도 전에 또 다른 위기를 맞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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