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테라사태 권도형은 왜 한국행을 그토록 원했나

병과주의 미국에서 재판받으면 100년형 예상
한국에선 경제사범에 낮은 형량 솜방망이 처벌

박종국 승인 2024.08.07 15:03 | 최종 수정 2024.08.07 15:10 의견 0
권도형 지난3월 23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경찰청에서 조사받은 뒤 무장 경찰대에 이끌려 나오고있다.@연합뉴스


[뉴스임팩트=박종국 기자] ‘테라·루나’ 사태로 투자자 20만명 이상에게 490억달러(약 67조원)의 피해를 입힌 권도형씨의 재판관할권을 두고 미국과 한국이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 와중에 몬테네그로 법원에서 권씨의 한국송환을 결정하면서 권씨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1일(현지시간)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항소법원은 판결문에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도형에 대해 한국으로의 약식 인도를 허용한 반면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기각했다”며 “이 결정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이) 항소하지 않았으므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테라사태를 일으킨 권씨에 대해 그동안 미국과 한국은 서로 자국에서 재판을 하겠다고 경합을 벌였다. 테라사태의 피해자가 비단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미국 역시 권씨를 데려다가 미국에서 재판하기 위해 몬테네그로 사법당국을 설득해왔다.

국내법망을 피해 해외도피를 택한 권씨는 2023년 3월 24일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을 쓰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직후 권씨는 몬테네그로의 수도인 포드고리차 근방에 있는 스푸지 구치소에 구금됐다.

권씨는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추적중이었기 때문에 몬테네그로는 양국의 송환요청을 둘고 어느 나라로 보낼지 재판에 부쳤다. 하급심에서 한국 송환 판결이 내려졌는데, 몬테네그로 대법원은 몬테네그로 대검찰청의 손을 들어주어 한국 송환 결정을 번복했다가 이번에 다시 고등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한국행을 확정한 것이다.

권씨는 그동안 미국으로의 송환을 막기 위해 치열한 법정다툼을 벌여왔다. 스스로 한국을 떠나 해외도피를 선택했던 그가 애걸복걸하며 한국에서 재판받기를 희망한 것은 미국에서 재판받을 경우 자칫 100년 이상의 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병과주의 미국, 경제사범도 극형= 미국은 경제사범에게 자비가 없다. 미국은 화이트칼라범죄, 즉 금융범죄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동시에 여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병과주의’를 적용한다. 병과주의란 각 혐의에 대한 형량을 합산해 최종형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다단계 금융사기(폰지사기)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던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은 징역 150년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2009년 6월 미국 맨해튼 연방법원은 650억달러의 피해를 일으킨 메이도프에게 징역 150년을 선고하고 벌금 1700억달러와 부동산 및 차량·보트 등 전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메이도프에게는 총 11개의 혐의를 적용했는데, 법원은 각 혐의별 형량을 합쳐 150년의 징역형을 때린 것이다. 선고 당시 71세였던 메이도프는 2021년 교도소 의료시설에서 8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2000년 뉴욕 사업가 출신인 숄람 와이스는 내셔널 헤리티지 라이프 인슈어런스에서 4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사기를 벌였다가 84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845년형은 미국 사법역사상 경제사범에게 내려진 최대형벌로 기록되고 있다.

◇가중주의 한국, 경제사범에게는 천국= 반면 한국은 유죄로 인정된 여러 개의 혐의 중 형량이 가장 높은 혐의를 기준으로 가중처벌하는 가중주의를 택하고 있어 미국만큼 높은 형량이 나올 수 없다.

형법 제38조 제1항 제2호는 ‘각 죄에 대해 정한 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 외의 같은 종류의 형인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해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에 그 2분의 1까지 가중하되, 각 죄에 대해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을 합산한 형기 또는 액수를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형법은 유기징역의 경우 상한을 30년으로 두고, 형을 가중할 때는 최대 50년형까지만 선고하도록 하고 있어 권씨가 최대형량을 받더라고 50년을 넘길 수 없다는 얘기다.

권씨와 같은 거액의 피해를 낸 경제사범의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상 사기혐의가 적용된다. 특경법은 사기로 인한 이득액이 5억원이상이면 해당되며,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의 경우 벌금형 없이 3년이상의 복역형이 선고된다,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이 내려지는데, 지금까지 경제사범에 대해 무기징역이 내려진 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기징역은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만약 특경법외에도 자본시장법,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유기징역형이 내려져 가중되면 권씨의 형량은 50년 이내에서 정해질 전망이다. 그나마 대법원으로 갈 경우 최초의 형량보다는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고, 형기를 다 마치지 않더라도 사면이나 모범수 혜택을 받아 형중간에 풀려날 수도 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경제사범에게 내려진 최대 형량은 1조원대 펀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재현 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 내려진 징역 40년이다. 김 전 대표는 이후 별도 횡령 혐의로 재판에 또 넘겨졌고, 올해 초 대법원은 징역 3년을 추가로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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