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논단] 한미약품家 분쟁과 화려한 일족

피도 눈물도 없는 재벌가 내부 갈등… 누가 이기든 패자에 퇴로 열어줘야

이상우 승인 2024.03.27 05:00 | 최종 수정 2024.03.28 14:13 의견 0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출처=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일본에 화려한 일족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하얀거탑으로 유명한 소설가 야마사키 토요코가 썼죠. 여러 차례 드라마화돼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도 소개됐습니다.

화려한 일족은 재벌가 내부 갈등을 다룹니다. 은행장이자 재벌 총수로 군림하는 아버지(만표 다이스케)와 계열사인 철강 회사의 전무를 맡은 아들(만표 텟페이)이 고로(高爐·용광로) 건설 프로젝트 융자금 문제로 격돌하죠.

만표 다이스케는 과감한 융자를 해달라고 주장하는 만표 텟페이에게 '은행 대출엔 피도 눈물도 없다. 부자간이라도 마찬가지다'고 내뱉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만표 다이스케는 경쟁 은행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만표 텟페이와 철강 계열사를 희생양으로 삼죠. 기업 경영에서 가족의 정이란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잘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지난달부터 이어지고 있는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 분쟁을 지켜보면서 화려한 일족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가 딸(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연합해 아들 둘(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을 내치는 모습이 피도 눈물도 없는 화려한 일족 재벌가 그 자체여서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아들 형제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고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에 주주 제안도 했죠. 송영숙 회장, 임주현 사장 모녀(이하 모녀)와 임종윤·종훈 사장 형제(이하 형제)의 지분이 비슷해 한쪽이 유리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는 28일 한미사이언스 주주 총회에서 모녀와 형제 중 승자가 나옵니다. 어떤 경우든 분쟁은 지속될 전망입니다. 형제 입장에선 경영권 탈환 외에 다른 대안을 고려하기 힘듭니다. 모녀로서도 뒤늦게 형제와 타협하긴 어렵죠.

화려한 일족에서 만표 다이스케 때문에 몰락한 만표 텟페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너무 극단적인 선택 아닌가 싶지만 경영자로서 자존감을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여겨집니다. 한미약품그룹 분쟁에선 누가 이기든 패자를 지나치게 구석으로 몰지 말고 퇴로를 열어줬으면 합니다. 그래야만 한미약품그룹의 상처가 덧나지 않고 아물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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