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한 개XX들에 길들여진 사회

서담 승인 2023.04.14 09:49 의견 0
사진@연합뉴스


[뉴스임팩트=서담 전문위원]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 학교폭력이 화두가 되었다. 때마침 불거진 힘 있고 가진 자들인 정치권 인사들의 자식이 자행한 학교 폭력이 드라마와 맞물려 이슈가 되면서 학교 폭력과 이를 대하는 사회의 자세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매체에서 학폭 이슈를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견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씨네21 기자 송경원의 글은 온통 학폭과 사적인 복수라는 주제로 덮혀진 미디어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무엇인지를 효과적으로 짚었다. 개새끼와 나이스한 개새끼의 차이와 그 차이가 만들어낸 소름 돋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여기서 말하는 나이스한 개새끼는 드라마 더 글로리에 건설회사 사장으로 등장하는 인물인 하도영을 지칭하는데, 드라마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가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하도영이라는 캐릭터를 나이스한 개새끼라고 설명한 이후 회자되는 말이기도 하다.

왜 그가 나이스한 개새끼인지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잘 보여준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받쳐주던 운전기사가 도영에게 잠깐 우산을 받아달라고 한다. 어느 회장이 선물한 와인을 차에서 꺼내와야 하기에. 그러나 도영은 자신은 그 와인 필요 없으니 기사보고 가져가서 마시라고 한다. 비싼 와인일 텐데 그럴 수 없다며 기사가 재차 우산 좀 받아달라고 하자, 도영은 그를 간단하게 해고해 버린다. 와인 맛도 모르고 눈치도 없는 기사는 그렇게 도영의 말 한마디로 직장을 잃었다. 시종일관 신사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품위를 지키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시선으로 노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인지, 도영의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그런 도영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 나이스한 개새끼이다.

더 글로리는 악역을 맡은 배우들의 인기가 오히려 주인공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배경에는 악역들이 하나같이 매력적 캐릭터로 그려졌다는 측면과 더불어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권력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부자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고,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한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태도가 자리잡고 있다.

송경원 기자가 예리하게 짚어낸 지점은, 돈과 권력을 가진 개새끼가 나이스한 인물일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나이스한 개새끼에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낸 점이다. “편중된 부에 대한 원망과 부자들에 대한 선망이 뒤엉킨 사회에서 미디어는 나이스한 개새끼들에 중독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극중에서 하도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지만, 시청자들은 아무도 그가 벌을 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스한 개새끼에게 길들여져 그의 악행도 나이스하게 포장되어 정당화되고 용인되는 모습이다.

나이스한 개새끼에 대한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은 우리 사회가 이미 철옹성처럼 공고하게 구축된 계급사회로 극명하게 갈라져 있고, 계급간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서민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제도적으로 복수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학폭 피해자인 문동은이 가해자에게 행하는 사적 복수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열광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의 나이스함에 중독되고 길들여져 그들의 개새끼적인 모습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동경하기까지 하고 있다.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한, 그리고 구조화된 계급사회에서 결코 가질 수 없기에, 나이스한 개새끼가 동경의 대상이 된 것이다. 신분 상승의 기회가 원천 봉쇄당한 흙수저들이 금수저에게 갖는 복잡한 심정이 드라마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평론이 복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사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그런 사회 구조적 문제 보다는 나이스한 개새끼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우리 자신인 것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늦었다고 생각되면 진짜 늦은 것이라는 어느 개그맨의 역설적 명언도 있으나,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영어에는 늦게라도 하는 것이 아예 안하는 것보다 낫다(better late than never)라는 말도 있으니, 지켜볼 일이다. 우리 사회의 자정 능력이 어디까지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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