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콘텐츠의 힘

서담 승인 2022.12.26 14:40 의견 0


[뉴스임팩트=서담 전문위원]요즘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재벌가 비서로 일하던 주인공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고, 과거로 돌아가 그 재벌집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나서 복수를 이어가는 내용의 드라마이다.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우리나라 재벌들의 성장 과정과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이미 알고 있는 주인공이 복수를 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지기에 시청률이 높다. 극 중 주인공이 아들로 태어난 재벌가인 순양그룹은 삼성그룹을 연상시키는 설정이고, 쟁쟁한 출연배우들의 탁월하고 입체적인 인물 묘사 연기에 힘입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드라마의 설정은 돈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재벌가의 처절한 권력 싸움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그룹을 접수하기 위한 계획을 실현해 나가는 내용이지만, 단순히 흥미위주의 복수극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구석구석에 한국의 재벌과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비판하는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깔아놓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이런 경향은 국제적으로 인기를 얻은 다른 드라마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신기록을 세우고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오징어게임”은 돈이 최고의 가치인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빚에 시달리다 극단적 환경에 내몰리는 처절한 소시민들의 삶을 묘사했다.

올해 전반기에 인기를 얻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한국 사회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차별에 대한 내용을 극중에 잘 녹여내어 큰 인기를 얻었다. 조금 더 뒤로 가보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기생충”도 사회 계급에 관한 매우 시니컬한 비판 메시지가 영화의 중요 포인트였다.

사회 비판적인 주제가 오락적인 요소와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한국 콘텐츠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다른 나라의 일반적인 콘텐츠에서 찾기 어려운 점이다. 바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게 된 주요한 요인이다. 억지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극중에 녹아들어가 있기에 설득력이 큰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게 되었을까? 그만큼 한국 사회가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경제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서구 국가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하며 형성된 사회 정체성과는 달리, 우리는 매우 짧은 시간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급하게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런 급격한 변화가 가져온 불평등과 자별을 피부로 체감하며 살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성장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불과 수십 년 만에 군사 독재에서 민주 정부로, 그리고 다시 민주적 투표를 통한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숨 가쁘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고도 경제 성장기의 독재체재 하에서는 재벌과 기득권층에게 착취당하는 삶을 몸으로 겪으며 살아냈고,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목숨이 희생되기도 했다. 정신 차리고 있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만연한 사회이기도 하다. 서만들은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지만, 기득권층은 손쉽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민족의 DNA에는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드라마나 영화에도 이런 DNA가 반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바로 코로나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이다. 코로나 사태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계급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때마침 오락성을 겸비한 한국의 콘텐츠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니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를 고작 단순히 콘텐츠 제작 용도로만 사용하고 근본적 해결책은 망각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된다. 현 정부 들어서고 난 이후 계속 퇴보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보면, 그나마 드라마에 존재하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도 곧 사그라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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