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룹이 뭐지?

서담 승인 2022.12.02 09:59 의견 0
궁중 드라마 슈룹의 장면=tvN의 유튜브 공개영상 장면 캡쳐


[뉴스임팩트=서담 전문위원]드라마 제목이 “슈룹”이다. 외국어인 줄 알았는데, “우산”의 우리말이다. 일상생활에서 들어보기 어려운 우리말이라 아마도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그런 말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언어는 사회적 계약이니,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기에 새로운 말이 생겨나며, 쓰이지 않는 말은 점차 사라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우산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슈룹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우리 기억 속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드라마의 제목으로 소환되기 이전에는.

언어는 움직이는 것이니 자연스러운 변화는 당연한 것인데, 요즘 우리말은 정체불명의 외래어가 너무 남용되어서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다. 원래 우리말에 없는 외국 문물이 들어오며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겠으나,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나 외국어가 일상용어로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외국어는 고유의 한국어 단어를 대체하고 있는데, 국제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나이든 세대에게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으니 소통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

요즘 대중매체를 다루고 있는 글이나 에세이에 보면 “빌런villain”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쓰인다. 악당, 악인을 의미하는 것인데, 엄연히 한국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나 영화의 악당을 지칭할 때 대부분 빌런이라 표현한다.

요즘 할리우드의 영화나 한국의 영상 콘텐츠에서 묘사되고 있는 악당들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을 벗어나서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아마도 빌런이라는 단어가 악당이라는 한국어보다는 그런 인물 묘사에 더 적합한 표현이라 생각해서 사용하는 듯하다.

거의 한국어처럼 사용되는 영어 단어들도 많다. “쿨”하다는 표현은 아예 젊은 층들 사이에서는 진부할 정도로 자리 잡은 단어가 되었다. 비슷하게 젊은 층 사이에 사용되는 단어로 “스웩” 혹은 “스웨그”도 본능적인 자유로움이나 자신감을 표현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원래 영어에서 swag는 건들거리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으나, 미국의 힙합 음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로 자리 잡더니 개성 있는 자기표현이라는 의미로 한국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요즘은 뜸하게 사용되는 듯한데, “엣지”있다는 표현이 패션 감각을 표현하는 단어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모서리를 뜻하는 영어 edge에서 온 말인데, 세련된 개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남다른 개성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는 사람에게 엣지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단순히 세련되었다거나 개성 있다는 표현과 약간 차별되는 의미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어와 약간의 차이를 가진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딱히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고, 자연스럽게 언어가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진화하는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이면 된다. 컴퓨터를 억지로 “전산틀”로 바꿔봐야 소용없는 일이고,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대체할 수는 있겠으나 그리 널리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외국어에서 차용된 단어뿐 아니라 우리말에도 해당되는데, 예컨대 아무리 “자장면”이 표준어라고 강요해도 모든 구성원이 “짜장면”으로 발음하고 표기하고 있으니 결국 “짜장면”이 표준어가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언어는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정도에 따라 효용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국에서 온 단어가 우리말을 잠식하고 있는 것을 딱히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고, 최근에는 거꾸로 한국어 단어가 해외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대중음악과 영상 콘텐츠 등, 한류 문화 콘텐츠의 인기는 한국어 단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로 자리 잡는 추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옥스퍼드 사전에는 대박, 오빠, 언니, 먹방, 화이팅 등의 단어가 새롭게 등재되었다. 이런 단어들 중에서 파이팅의 경우는 영어의 원래 의미가 변형되어 한국에서 자리 잡은 경우이다.

영어에서 “싸움”을 의미하는데 한국에서 기운을 내라는 응원의 의미로 사용된 대표적인 콩글리시이다. 그런데 이제 오히려 한국에서 변형되어 사용된 의미가 다시 영어로 수출되었다. 옥스퍼드 사전에 파이팅은 “expressing encouragement” 즉 응원을 표현하는 뜻으로 실려있으니, 영어 단어가 한국에 수입되며 원래 의미와 다른 다소 엉뚱한 의미로 사용되다가, 그 의미가 다시 영어로 수출된 특이한 경우이다.

이렇듯 언어는 지속적으로 변하고 진화하고 있는데, 슈룹처럼 이미 흘러가고 잊혀진 단어가 다시 생명을 얻기도 하고, 외국어가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자리 잡기도 한다. 다만 다른 한국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너무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나이가 있는 세대들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다.

이러다가 세대 간에도 통역이 필요한 시대가 오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를 접하며, 오늘도 인터넷에서 그 의미를 검색하며 살고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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