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서평] 인간의 본질 밝힌 역사소설 '세키가하라 전투'
인간은 정의·사랑뿐 아니라 이해관계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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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9 07:44 | 최종 수정 2022.06.30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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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임팩트=이정희기자] 사람을 움직이는 요소는 여러 가집니다. 정의, 논리, 사랑, 우정, 애국심 등이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용병으로 뛰어든 사람들을 지배한 건 정의입니다. 불의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물리치고 우크라이나를 지키자는 정의감이 이들을 움직인 거죠.
사랑은 어떨까요. 중국 소설가 김용의 무협 소설 '신조협려'를 보면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하느뇨"라는 시가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은 남녀 간의 사랑을 뜻하죠. 사랑이 깊으면 삶과 죽음조차 초월한다는 얘깁니다.
애국심도 사람을 움직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선조 임금에게 올렸다는 장계에 나오는 '금신전선 상유십이(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가 이를 잘 보여주죠. 수백 척을 몰고 쳐들어오는 적을 두려워하기는커녕 12척이 남아 있으니 끝까지 싸우겠다는 이순신 장군의 결기는 애국심 외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일본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쓴 세키가하라 전투에도 사람을 움직이는 요소가 제시됩니다. 다만 이 책에선 앞서 언급된 요소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됩니다. 시바 료타로가 주목한 요소, 세키가하라 전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좌우하는 요소는 바로 이해관계입니다.
소설의 최대 악역이자 에도 막부 265년을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간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습니다. 그는 이익을 원하는 자에게 이익을, 자리를 원하는 사람에겐 자리를 줘가며 세력을 불려 나갑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공백이 생긴 권력을 탈취하고 일본을 지배하기 위해서죠.
그 와중에 정의의 깃발을 높이 든 사람도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이시다 미쓰나리와 그의 충직한 부하 시마 사콘 같은 이들이죠. 미쓰나리는 정의와 논리를 앞세워 도요토미 가문을 수호하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이에야스만큼 세력을 형성하진 못했죠.
도쿠가와 진영(동군)과 미쓰나리 진영(서군)은 1600년 10월 21일 세키가하라에서 '천하를 둔 전투'를 벌입니다. 하지만 승부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결판이 나 있었습니다. 이해관계를 내세운 이에야스 앞에 서군 장수들이 대거 회유됐기 때문입니다. 전투에 진 미쓰나리는 역적으로 낙인찍힌 채 목숨을 잃죠.
흔히 이해관계는 정의, 사랑, 애국심 등에 비해 동물적이고 수준이 낮은 것으로 치부됩니다. 하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 가운데 이해관계보다 정의와 사랑을 중시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얼마면 돼. 돈 주고 (네 사랑을) 사겠어'라는 드라마 대사가 보여주듯 뭐든지 이해관계로 해결하려는 태도마저 보이는 게 현대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해관계는 정의와 사랑 못지않게 인간의 본질에 해당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이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안고 살아야 할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책이라 생각해 감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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