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논단] 김걸 현대차 사장 전격 용퇴와 머슴론

회사 위해 헌신했지만 언젠간 주인집 떠나야 하는 머슴의 운명

이상우 승인 2024.11.25 01:00 | 최종 수정 2024.11.25 03:22 의견 0

김걸 현대자동차그룹 사장.@출처=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정주영 회장과 내가 오래 같이 있어서 인간관계가 두텁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로 만났기에 일 때문에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재벌이란 냉정한 겁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991년 현대건설 회장으로 재직할 때 한 시사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부자지간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가까웠던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에 대해 이명박 회장이 거리를 두는 얘길 하자 뒷공론이 쏟아졌죠. 1년 후 두 사람은 결별합니다. 재계에선 '이명박 회장이 아무리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신임을 받았어도 주인은 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머슴이었다'는 머슴론이 회자됐고요.

지난 22일 김걸 현대자동차그룹 기획조정실장(사장)이 물러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머슴론이 떠올랐습니다. '그리 잘나가던 김걸 사장조차 주인이 아니기에 짐을 싸야 하는 순간이 오는구나' 하는 감상이 들어서죠.

김걸 사장은 장재훈 부회장과 함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장재훈 부회장이 좌청룡이라면 김걸 사장은 우백호쯤 되겠죠. 실권은 김걸 사장이 쥐고 있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장재훈 부회장이 사업 관리를 맡은 반면 김걸 사장은 경영의 핵심인 재무와 기획 분야를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정의선 회장이 그토록 아끼던 김걸 사장을 내친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진실은 두 사람만 알겠죠. 다만 김걸 사장이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자 자진 사임했다는 현대차그룹 입장엔 신빙성이 안 느껴집니다. 그럴 거면 지난 15일 발표된 사장단 인사에 김걸 사장 용퇴가 들어갔어야죠.

현대차그룹 같은 일류 기업의 고위 임원이 되려면 일을 잘하는 건 기본이고 회사와 결혼했다는 마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김걸 사장 역시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인생을 바쳤을 테죠. 하지만 그도 언젠간 주인집을 떠나야 하는 머슴이었습니다. 정말 머슴론은 직장인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걸까요. 혹시 세월이 더 지나면 국내 대기업 문화가 바뀌어 미국처럼 주인과 맞먹는 머슴이 나올까요. 괜스레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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