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하남검단산역에 내려 팔당대교 주변 고니 다른 말로 백조로 불리는 겨울 철새를 보러 가는데, 자연스레 ‘미운 오리 새끼’ 동화가 생각난다.
그 오리가 백조이고 그 백조가 고니라는 걸 알게 된 지 꽤 오래였지만, 백조가 일본 번역어라는 게 께름칙했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던져주었던 선율에 흐르는 하얀 발레복 색감에 고니가 너무 와닿지 않아 고니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솜뭉치만큼 큰 덩치가 우아하게 하늘을 나는 새 이름은 백조가 느낌상 온당한 것 같았다. 백조를 버리는 순간 미운털 박힌 생명이 장밋빛으로 비상하는 희망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영원히 나오지 못할 감옥 같은 미래에 갇힐 것 같아서다.
하지만 이는 동물원 말고 실제로 자연 상태에서 고니를 못 품어 나온 왜곡일 수도 있었다. 날것 그대로 직관으로 마주하지 않은 생명에 온갖 상상의 덤불만 입힌 관념의 군더더기에 매력을 느끼는 가짜 삶일 수도 있었다. 모든 게 인간 위주로 아니 내 위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당연하고도 당연하지 않아야 할 생각이 부서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졸렬한 헛짓거리일 수도 있었다.
자연을 알아간다는 게 뭘까? 내 안의 오욕칠정 파고보다 더 파란만장한 일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것 아닐까? 그 모든 게 만드는 세상사가 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다시 알아채다 보면 내면과 외면으로 분리되어 빚어지는 수많은 상념들이 강물에 쓸려 형체 없이 흘러가지 않을까? 이보다 더 완벽에 가까운 치유가 어디 있을까? 발품 팔아 걷는 것만으로도 평정을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하남검단산역에서 산곡천 따라 20여 분 걸으니 팔당대교가 보인다. 주위를 보니 커다란 카메라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 또 보인다. 그곳이 명당 포인트라고 판단하며 다가가 본다. 아닌 것 같다. 강물에 떠 있는 고니와 오리들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늘을 나는 고니 혹은 참수리를 사진으로 남기려는 것 같다. 연신 허공에 눈길이 가 있는 것 같아서다.
발길을 돌려 조류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곳 쌍안경으로도 보고 맨눈으로도 보는데 고니가 내는 듯한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안내판을 읽으니 큰고니는 여러 마리가 모여 있을 때 매우 큰 소리를 내고, 혹고니는 소리를 많이 내지 않는다고 한다.
큰고니, 혹고니, 그럼 고니는 뭐지? 도감을 보면 고니는 “큰고니보다 낮고 부드럽게 ‘호, 호’ 또는 ‘호우, 호우’ 하고 운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 눈앞의 저 고니는 누구인가? 귀에 들려오는 저 소리가 큰지 안 큰지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의 소유자라 가늠할 수 없다.
그래도 일반 기준으로 소리가 큰 것 같아 큰고니라고 생각해 본다. 도감을 보면 큰고니는 부리가 긴 편이고 콧구멍 근처까지 노란색이 내려오고, 고니는 큰고니에 비해 부리의 노란색 부분이 좁다고 한다. 그래서 뭘까? 큰고니다. 고니는 개체수가 크게 감소하여 보기 드물단다.
고니, 큰고니, 혹고니 하다 보니 백조 앞에 접두사를 붙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해진다. 큰백조, 혹백조? 드디어 백조라는 이름을 고니에서 떼어버릴 때가 되었다. 철새 도래지에서 큰고니를 마주하니 인공물 사이에서 옴죽거리던 관념이 보기 좋게 날아가 버린다. 속이 후련하다.
자연을 알아간다는 게 비움의 치유가 되는 걸까? 큰고니가 러시아에서 우리나라까지 왕복 8천 킬로미터를 오가며 살아가는 것도, 대략 10킬로그램의 무게를 띄워야 하다 보니 강물 위를 열심히 도움닫기로 뛰다 나는 것도, 착륙 시 물갈퀴로 물의 저항을 줄이면서 강물에 안착하는 것도, 한낮에 부리를 등 뒤 깃털에 묻고 틈나는 대로 자는 것도 다 큰고니의 일일 뿐이다.
그러니까 고니가 백조가 되어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내가 만든 허상이라는 걸 인지해 보면, 그 허상이 만들어내는 상념에 무게를 두지 말고 그냥 자연 그대로의 고니 삶만 들여다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을 보고 또 보고 자연을 또 알아가고 하다 보면 그곳 안내판 문장이 무얼 전달하고 싶어 하는지 뜨끔할 정도로 쑤시는 것이다.
“새들의 보금자리 하남 당정뜰 : 당정뜰은 한강 중류의 배후습지입니다. 당정뜰은 사계절 내내 수많은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어머니와 같은 곳입니다. 당정뜰에 봄이 오면 자갈밭에서 흰목물떼새가 생명을 품습니다. 여름이 오면 갈대숲에서 개개비가 큰소리로 노래하며 번식을 합니다. 가을이 오면 월동지로 이동하는 나그네새들이 쉬었다 갑니다. 겨울이 오면 터줏대감 큰고니와 오리들이 돌아와 사이좋게 지내고 참수리와 흰꼬리수리가 수시로 방문합니다.”
바로 이곳 주인은 우리가 아닌 다른 생명체라는 데 구심점을 두면 팔당 나들이가 주었던 즐거움의 원천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사실 낭만에서 생명 품기로 바뀌어 가고 있다. 조류전망대를 떠나 한강을 따라 걷다 보면 당정뜰 메타세쿼이아길이 나오고, 또 계속 걷다 보면 위례강변길이 나온다. 그러면서 또 만나는 ‘당정’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사람의 간섭으로 터전을 잃었던 생명체들이 사람의 불간섭으로 다시 돌아와 아름다운 강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팔당팔화수변공원으로 불리던 그곳이 당정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시기는 2020년이다. 하남시가 시민을 대상으로 명칭 공모를 하여 대상을 받은 당정뜰은 본래 하남과 남양주 사이 한강에 있었던 당정섬에서 나왔다.
당정섬 유래는 다음과 같다. “조선 개국공신 조반의 후예인 한성부 좌윤 조필방이 아들과 함께 예봉산에 사냥을 왔다가 이곳을 내려다보고 하도 아름다워 ‘장차 벼슬에서 물러나면 저곳에 살리라’ 했다는데 이 말이 현실로 되어 당정섬에 들어와 처음(1666년) 살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백천(白川) 조(趙)씨가 이곳에 많이 살게 되었으며, 이들은 이곳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게 되니 정자가 있는 곳이라 하여 당정리(堂亭里)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인하여 대부분의 주민들이 육지로 이주하고 농경지로 남아 있다가 1994년 한강종합개발계획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멈추지 않는 강물이 다시 군데군데 모래와 흙을 쌓아 섬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강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습지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그 사이로 낸 산책길에는 왕벚나무와 느티나무가 이정표처럼 서 있다. 사람과 자연이 자연스레 공존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미사 뚝방길로도 불리는 위례강변길은 하남시가 조성한 하남위례길 가운데 위례사랑길(1코스), 위례역사길(3코스), 위례둘레길(4코스)에서 2코스에 해당된다. 산곡천에서 미사경정공원과 나무고아원을 지나 선동축구장에 이르는 13.5킬로미터의 길로 굴곡이 없어 걷기에 평안하다.
추억의 미사리 카페를 떠올려도 되고 흐르는 한강에 그동안 쌓인 먼지 같은 상처를 날려도 된다. 그래도 외롭고 힘들다고 여겨지면 나무고아원에 들러 사라질 뻔했다가 다시 꿋꿋이 자라는 나무들을 보자.
나무고아원은 도시 개발로 버려지는 나무들을 옮겨 심은 뒤 다시 가로수나 조경수로 조성하려고 마련한 부지였는데, 지금은 도심 속 아니 한강변 숲으로 가꾸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걷다 보면 이름과 달리 나무 우거진 여느 공원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플라타너스를 보면 거대한 가족의 품이 느껴지고, 거기를 지나 만나는 큰고니 조형물을 보고 있으면 하나보다는 둘에서 따뜻한 온기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도 혼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우울해진다면 강변으로 나와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떠올려 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현실이 아파도 거기 존재하는 자연이 있는 한, 백조가 아니어도 큰고니로 훨훨 나는 한, 그걸 알고 알아가다 보면 가족 같은 희망은 늘 품어낼 수 있으니까. 그게 자연이 주는 마음이니까.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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