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이정희기자] 국내에서 방위산업(이하 방산)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방산 종주국인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너무 큰 데다 이익이 많이 나지도 않고, 정치와 엮일 수밖에 없는 B2G(기업과 정부 간 거래) 비즈니스 특성상 비리 논란이 종종 발생해서다.
국내 최대 기업 집단인 삼성그룹이 2015년 방산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한 것도 방산 때문에 자신들이 비리 기업으로 매도돼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방산을 둘러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가 크게 작용했다.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국내 방산 제품을 사들이고 있다.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즉시 전력이 될 무기가 많이 필요한 유럽 국가들은 국내 방산 제품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우수한 점, 납품 시기 준수가 엄격히 이뤄지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다만 일시적인 훈풍에 안주해서는 방산의 미래가 순탄치 않다. 어떤 악재에도 흔들림 없는 탄탄한 경쟁력을 갖춰야 방산이 전자, 자동차 같은 국내 주요 수출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될까. 뉴스임팩트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을 만나 그 길을 물었다.
채우석 학회장은 1972년 육사 28기로 임관했다. 미 콜로라도주립대 경영학 석사와 위스콘신대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국방부 조달본부(현 방위사업청) 외자 과장, 평가·획득 과장을 역임했다. 장군으로 승진한 뒤 국방부 연구·개발 국장을 지냈다. 예편 후 조달본부 차장을 맡았다.
-한국방위산업학회는 어떤 기관인지 여쭤보고 싶다.
"국내 최초 방산 학술 단체다. 체계적, 논리적으로 방위산업을 설명하고 정부에 정책 제안도 해보자는 의견을 모아 1991년 한국방위산업학회를 창립했다. 방산 관련 대학교수와 연구기관 연구원, 방산업체 임직원, 정부 관계자, 방산 분쟁 해결에 관심 있는 법조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1970년대 방위산업을 키우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한 백영훈 박사가 초대 학회장을 맡았다. 저는 5대 학회장이다. 2011년부터 계속하고 있다."
-한국방위산업학회 업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방산업체가 첨단 무기를 만들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는다. 흔한 사례다. 그런데 일각에선 비리가 있다며 과도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방산업체들이 리베이트(사례비)를 제공한다는 편견 때문이다. 이를 워크숍, 세미나, 언론 기고 등으로 교정하는 단체가 한국방위산업학회다."
"방산업체들은 일각의 부패 프레임(인식 형성)과 달리 비자금을 만들 수 없다. 정부가 방산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 제조원가를 포함한 사업비를 엄격히 관리한다. 남는 게 별로 없는데 방산업체들이 어떻게 발주처에 리베이트를 주겠나. 먹이사슬이 존재하지 않는 산업이다."
-방산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이들이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활용해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방산을 알고 얘기해야 하는데 자극적인 상품화에 몰두하며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방위산업학회가 방산의 상품화를 막고 있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예비역들을 영입해 정확한 방산 정보를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방산 수출액이 173억달러(23조1734억여원)였다. 2021년 수출액 72억5000만달러(9조7114억여원)보다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초일류 방산 국가에 들어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국산 무기를 구매한 나라는 군사 표준뿐 아니라 경제, 문화까지 한국식으로 차츰차츰 변한다. 자연스럽게 한국화가 되는 거다.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연구·개발을 강화해 국산 무기의 상품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아울러 방산은 무기만 판다고 끝이 아니다. 30년에서 50년은 교육 훈련이나 부품 공급, 유지·보수 작업 같은 후속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 이것까지 잘 해내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산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동유럽 국가들이 재무장에 힘쓰고 있다. 그만큼 방산시장 규모도 커졌다. 국내 방산업체들이 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써야 한다고 보나.
"재무장이 갑자기 되진 않는다. 준비할 시간이 있는 만큼 국산 무기의 가성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정부도 국방 예산을 대폭 확대해 방산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방산은 B2G 비즈니스여서 정부 영향이 매우 크다.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역할을 분담해야 할까.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해 나가려면 정부가 방산업체를 일일이 통제해선 안 된다. 기업에 자율권을 줘야 한다. 다만 절충 교역을 포함한 폴리티컬 바게닝(정치적 교섭)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
※ 절충 교역은 외국 정부가 군사 장비, 물자, 용역을 사들일 때 계약자에게 기술 이전이나 부품 역수출 같은 일정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것이다.
"방산업체들도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 그치지 말고 종합상사형 기업과 협업해야 한다. 제품 패키지를 수출하면서 수입을 연계하자는 얘기다. 예컨대 아프리카 국가에 무기를 팔고 자원을 수입하는 구상 무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구상 무역으로 두터운 관계를 맺은 다음 그 나라의 경제 개발에도 관여한다면 항구적인 거래처가 확보된다."
※ 구상 무역은 수출입 물품 대금을 돈으로 지급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수입 또는 수출로 메꾸는 국제 무역 거래 방식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무기와 탄약이 부족하다. 우리가 미국을 도와줘야 하나.
"당연히 미국을 지원해야 한다. 국내 방산이 잘되고 있는 것도 미국의 암묵적 협조가 있어서다. 미국은 첨단 무기에 집중하고 있기에 소요가 많은 재래식 무기는 한국이 책임지는 형태로 상호 역할 분담을 하는 게 좋다. 현재 추진 중인 한미 국방 상호 조달 협정도 빨리 체결해야 한다."
※ 국방 상호 조달 협정은 미 국방부가 동맹, 우방국과 방산 제품 수출 시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완화하자는 취지로 체결하는 양해각서다. 국방 분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린다.
-탄약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분단국가인 우리는 탄약 재고량을 얼마 정도 가져가야 할까.
"적정한 탄약 재고량은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탄약을 너무 많이 갖고 있으면 보관 비용이 낭비된다는 거다. 따라서 재고량 유지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이 나면 순식간에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 해외에 탄약 공장을 많이 조성해 생산 기지를 다변화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미국과의 협력 문제로 돌아가서 질문하겠다. 우리가 미국과 너무 밀착하면 중국이 반발할 수 있는데.
"중국 집권 세력인 공산당의 횡포는 이미 도를 넘었다.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 일본과 결속해야 한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도 돈독한 유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중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이 지역의 국가들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장이 빈약하다. 우리가 중고 무기를 무상 지원하고 신규 무기는 수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고 6·25 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세계에 보답하는 길이다."
-독재 국가의 무장도 도와줘야 하나.
"딱 잘라서 말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공산주의를 택한 국가가 아니라면 교류를 안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고 민도(시민 의식)를 깨우쳐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는 편이 낫다."
-마지막으로 군사 외교에 대해 묻겠다. 우리 군이 평화 유지군으로 활동해 국제 분쟁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는 세계 각국의 요청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
"평화 유지군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거세다는 건 세계에서 우리 위상이 높다는 뜻이다. 강대국만이 해외에 군대를 보낼 수 있다. 파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파병으로 국가 이미지가 높아지면 방산 수출 확대도 기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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