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논단] 폼페이 유물전서 느낀 인간 증명

허망한 멸망 맞았지만 2천년 세월 뛰어넘어 삶의 흔적 남겨

이상우 승인 2024.04.29 10:25 | 최종 수정 2024.04.29 10:29 의견 0
폼페이 유물전 포스터.@뉴스임팩트

[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서울 여의도 더현대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멸망한 고대 도시 폼페이 관련 유물 전시회입니다.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상, 프레스코화, 장신구 127점을 선보이는 행사죠.

폼페이 도시 구획 영상(사진 왼쪽)과 유물.@뉴스임팩트

지난 27일 기대를 품고 폼페이 유물전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규모는 예상보다 아담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물들을 접하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2000년 전 폼페이 사람들이 현대인 못지않은 도시 구획을 하고 유리잔 같은 세밀한 공예품을 만든 것도 이번에 알게 됐죠.

폼페이 사람이 남긴 낙서.@뉴스임팩트

폼페이 사람들이 쓴 낙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태양은 밝게 빛났다가 금세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가득 차오른 달은 여지없이 다시 기울고, 거친 바람은 결국 잦아들게 되니까요'란 낙서가 강한 인상을 줬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성자필쇠(盛者必衰·흥성한 사람이나 국가는 반드시 망한다는 뜻)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새삼 느꼈죠.

장옷을 입은 여성 조각상.@뉴스임팩트

장옷(여자들이 나들이할 때 얼굴을 가리느라고 머리에서부터 길게 내려쓰던 옷)을 입은 여성을 섬세하게 묘사한 조각상을 살피다가 문득 폼페이 사람들이 얼마나 원통할까 싶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기술력을 2000년 전에 보유했으면서 최소한의 대비조차 불가능한 자연재해 때문에 허망한 최후를 맞았으니까요.

하지만 억울함이 전부일 순 없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극복 불가능한 운명에 휩쓸렸음에도 2000년 세월을 뛰어넘어 발자취를 남긴 폼페이 사람들의 '인간 증명'은 박수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져서죠.

성자필쇠와 무상(無常·모든 것이 덧없음)의 비애 속에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입증하며 살아갑니다. 폼페이 사람들처럼 말이죠. 그 노력 앞에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하는 게 후대인으로서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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