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 있는 그대로를 느껴 보는 인천 영종도 백운산 산행

김서정 승인 2023.12.23 12:19 | 최종 수정 2023.12.23 16:50 의견 0

영종역.@출처=연합뉴스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겨울비 내린 다음날 아침 하늘은 흐려 있었다. 영종도 백운산 반나절 산행 약속은 깨지지 않아 가볍게 물통 하나 넣고 길을 나선다.

고양시 화정역에서 대곡역으로 거기서 김포공항역 그리고 영종역으로 내달리는 동안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새삼 느껴 본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일을 하러 가는 목적은 거부할 수 없는 생존 욕구일 터인데 비좁아 터져도 모여 사는 게 본성인 듯 인내 가득한 표정들이다.

서해선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려면 에스컬레이터를 3개 오르고 2개 내려가야 한다. 환승치고는 길고도 지루하고도 복잡하다. 그래서 공적 공간은 좁아도 사적 공간은 비어 있는 걸 좋아하기에 자동차 문화는 발달했을 것이다.

아파트 너머로 보이는 인천국제공항.@김서정 작가

문득 부러운 듯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차들을 보다가 또 문득 갈수록 올라가는 아파트들이 많다는 걸 다시금 느껴 본다. 그래도 여전히 숲 면적이 크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 보며 영종역에 내려 함께 산행하기로 한 두 분과 합류해 차도를 따라 백운산으로 다가간다.

백운산(白雲山)은 영종도에 있는 몇 개 안 되는 산에서 가장 높지만 해발 255m이다. 자료를 보니 백운산에 산신이 살고 있다고 여겨 산신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시대엔 영종진(永宗鎭)이 설치되어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정상 부근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단다.

지금은 '백운산 봉수대지'라는 안내판이 있고 그 아래에 원형으로 돌아가는 석렬 3개를 복원해 놓았다. 이곳의 최초 봉수대는 19세기 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강화로 연대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왕벚나무 가로수 봄 풍경이 환상적이라는 인도를 따라 춥게 걸으며 백운산을 본다. 포천 백운산 등 여러 백운산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엔 20여 곳이 넘는 백운산이 있다. 산 이름 가운데 특히 많다고 한다. 그래서 백운산을 말할 때는 앞에 지역명을 붙여줘야 한다. 하얀 구름이 걸려 있는 산, 가장 알맞고도 무난한 작명일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인도를 벗어나 산 아래에 들어선다. 잎을 팔십 퍼센트 넘게 떨어뜨렸고 이마저 말라가고 있으니 수피를 자세히 보아야만 동정이 되는 나무들, 춥다고 은근슬쩍 지나치는데 운동회 날 박 터트리는 공기주머니 날아오듯이 참새들이 가지에 앉는다.

그런데 짹짹은 아니고 찌이익 찌이익 같기도 하고, 삐이익 삐이익 같기도 하고, 그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눈을 크게 뜨고 새 동정을 시도해 본다. 그러는 찰나 새들은 바람 타고 흔적 없이 하늘 어딘가로 숨어든 것 같다.

사람이 생명 에너지를 크게 가지려면 자연의 생명들과 더 많은 연결을 가지면 된다. 그건 생명들의 이름과 살아가는 모습을 안다는 것이기도 한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관련자나 덕후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은 자연으로 만든 이차 인공물에 갇혀 살고, 그것을 많이 소유하느냐 덜 소유하느냐에 기준을 두며 생존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게 어쩌면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걸 탈피해 보려고 올겨울 새를 관찰하는 탐조를 시도해 보고 있는데 이제 세 번 하고 무얼 알까? 무슨 새인지 신경 끄고 툭툭 걷다 보니 용궁사가 나온다.

용궁사 느티나무.@김서정 작가

용궁사 자료를 보니 "1990년 11월 9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영종도 백운산 동북쪽 기슭에 있다. 신라 문무왕 10년(670) 원효가 창건하였으며 1854년(철종 5)에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수되면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좀 더 보면 용궁사라는 이름을 갖기 전 어부가 고기 대신 옥관음상을 걷어 올려 이 절에 보관했다는 이야기를 흥선대원군이 듣고는 용궁사(龍宮士) 친필 현판을 주었다고 한다.

요사채로 쓰이는 건물에 여전히 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보다 모든 게 상징을 가지고 있는 불교 건축물들 앞마당에 서 있는 1300년 되었다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압도적 상상을 불허한다.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

버팀대로 높이 20미터의 키를 유지하고 있는 용궁사 느티나무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9호로 보호를 받고 있다. 속이 텅 빈 걸 보면 오장육부가 다 도려내져 있는 듯하고, 반으로 뚝 잘린 드럼통 같은 모습에 연민이 가도 남은 수피가 생명 품은 뼈와 살가죽으로 보여 연명이라기보다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진 숭고한 나무로만 다가온다.

그래서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느티나무 앞에 경건하게 서서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그 어떤 바람을 담지 않고 바람 맞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다 바람처럼 흩어지기를 바라면서.

백운산 소나무 군락지.@김서정 작가

서해 바람이 차갑게 얼굴을 쏘는 산길을 조금 오르니 소나무 군락이 펼쳐진다. "사람이 심은 건지 자연으로 자라는 건지 궁금하네요."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동행자가 물어온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숲해설가 동행자에게 떠넘긴다. 언뜻 봐서는 심은 것으로 보인단다. 결론이 나지 않아 이렇게 말한다. "제가 한 번 자료를 찾아보겠습니다."

'영종도 삼림식생의 군락생태'를 보면 "영종도의 삼림식생은 곰솔군락, 소나무군락, 상수리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졸참나무군락, 굴참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떡갈나무군락, 소사나무군락, 물박달나무군락의 10개 이차림과 리기다소나무식재림, 아까시나무식재림, 밤나무식재림 등 3개 식재림으로 구분되었다"고 나온다.

즉 영종도 소나무는 이차림(二次林)이라는 건데, 이차림은 "벌채나 산불에 의해 파괴되었던 천연림이 사람의 간섭 없이 자연적으로 복원된 산림"을 일컫는다.

숲의 종류는 크게 원시림(처녀림이라고도 하며 사람의 간섭이나 자연재해를 받은 적이 없는 산림), 인공림(우리 주변 대부분의 산림이 이에 해당하며 인공적으로 나무를 심어 이루어진 산림), 천연림(자연림이거나 자연 상태를 유지하고 있거나 비슷한 과정에 있는 산림으로 인공림의 반대 개념) 그리고 이차림으로 나눈다고 한다.

그래도 신기하다. 이차림은 누군가 가꾼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일정 간격을 두고 질서정연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지의 연유를 추론하기 위해 '영종도 삼림식생의 군락생태'를 더 본다.

"본 조사 지역의 소나무림을 역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고문헌으로서 조선왕조실록을 검토하여 보면, 조선 세종 1447년 병조에서 연해(沿海)의 여러 섬과 각 곶(串)을 방문하여 소나무가 잘 되는 땅을 기록한 바 있는데 현재 인천광역시의 용유도가 포함되어 있다(박 등 1997). 이는 비단 용유도뿐만 아니라 인접한 영종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들 해당 지역에 대해서는 소나무 벌목을 금할 뿐만 아니라 식재를 통하여 유사시 국가적으로 필요한 목재의 수급을 관리하여 왔던 것으로 이처럼 국가적인 송목양성(松木養成) 사업은 오랫동안 소나무가 주요 식생으로 본 조사 지역에 분포하게 된 주요인이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추론이 정리된다. 어떤 연유로 산림이 파괴되었는지 모르지만 한때 영종도 소나무는 관리 대상이었기에 다시 심은 것처럼 재생되었을 것이다.

빨갛게 익은 청미래덩굴열매가 푸른 숲에서 빛난다.@김서정 작가

소나무 숲을 지나는 동안 겨울을 이겨낼 면역력이 급상승한 기분을 느끼며 정상에 오르니 다도해 풍광 못지않은 섬들이 아무리 추워도 움츠리지 말고 나서길 잘했다는 응원을 보낸다.

다소 안타까운 건 갯벌을 누비며 날갯짓할 겨울 철새들이 도통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고 파고 메우고 메우고 세우고 세워 만들어가는 인간만의 거주 공간 확보에 따른 희생이 다른 생명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지만 이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져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생태계 인식은 회복되지 못할 것 같다. 그게 수많은 사람들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깊게 건드리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조금 알아보는 쇠박새 무리가 후두둑 날아들다 사라지는 걸 보이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느껴 보며 하산을 잠시 진행하다 설산처럼 순백으로 하얗지 않아도 새똥처럼 탁하게 하얘도 화사하게 눈에 들어오는 색감을 가진 나무들이 가득 자라고 있어 탐문해본다.

'중국, 일본; 한반도 서해안 및 남해안. 강원특별자치도 삼척, 함경남도'가 주 분포 지역이라는 소사나무다. 소나무 군락과 마찬가지로 소사나무 군락이 이차림이라고 해도 자생지에서 보니 반갑다. 그냥 원시림 혹은 천연림으로 여기며 보니 자연이 주는 있는 그대로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휘감기는 것 같다.

이제 겨울 산행에서 남은 건 얼어 있는 몸을 녹일 뒤풀이뿐이다. 백운산 정상에서 본 인천국제공항의 비상도, 활처럼 휘어진 듯 뻗은 인천대교의 질주도, 영흥화력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의 절멸도 푹신푹신 솔잎 이불 같은 숲길에 묻어둘 것이다. 원시림 같은 그 숲 사이사이 빨갛게 익어가는 청미래덩굴 열매에 스며들 것이다. 무엇이 자연이고 무엇이 인공인지 그 모든 걸 순대국밥에 말아 넣고 막걸리 한 잔으로 섞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남은 건 숲 해설 현장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과 다음 겨울 산행을 또 계획하는 것이다. 그렇게 숲을 가고 또 가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느껴 볼 것이다. 그렇게 숲을 가고 또 가면.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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