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 호연지기와 홍익인간을 배울 수 있는 강원도 국립횡성숲체원

김서정 승인 2023.10.15 10:37 의견 0

국립횡성숲체원 입구.ⓐ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숲체원은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산림교육 전문 휴양시설이다. 좋은 숲에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과 교육시설을 갖추고 실내 프로그램과 숲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숲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활동을 하는 곳이다. 조용한 곳에서 편안하게 힐링하면서 쉬고 싶은 휴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여느 곳보다 이용 요금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숲체원은 강원도 횡성과 춘천, 전남 장성과 나주, 경북 칠곡과 청도, 대전에 있다. 국립횡성숲체원은 국가 제1호 산림교육센터다.

한국관광공사 소개에 따르면 국립횡성숲체원은 '늘솔길(탐방로)의 하늘로 뻗은 잣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청태산 치유의숲 내 산림치유센터에서 스트레스 타파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유아와 청소년의 생태 감수성 발달과 신체 건강을 위한 산림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제공한다. 또한 낙엽송과 졸참나무 사이로 떨어진 도토리와 다람쥐를 볼 수 있다. 층층나무, 자작나무를 찾아 걷다 보면 계곡에 발을 담글 수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은 숲오감체험장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며 무장애 데크로드는 교통약자를 배려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숲을 만끽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태산로 777 주소를 가지고 있는 횡성숲체원에 가기 위해 모두가 자동차를 이용하겠지만 KTX를 타고 둔내역에 내려서 가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물론 둔내역에서 택시를 타야 들어갈 수 있지만 장거리 자동차를 안 타는 것만으로도 탄소 줄이기에 동참할 수 있다는 뿌듯함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그곳 숲체험이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해서다.

숲체원에서 숲의 중요성을 알았다는 건 더는 숲이 줄어드는 걸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더는 문명의 이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실천 의지를 갖는 것이다.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하루하루 안락하게 지내던 그 어느 날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생명체들이 이별 의식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숲체원이 전하길 숲체험을 하게 되면 아동·청소년들은 신체적 면역력이 증강되고, 만성질환자들의 증상도 개선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아울러 면역 불균형 개선 효과, 심리적 안정감, 우울감 회복 영역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보이고 학생들의 심리 안정, 인성 형성과 우울증, 불안감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숲이 이처럼 여러 면에서 사람들에게 큰 이로움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점점 숲이 줄어들며 지구가 뜨거워지면 이 모든 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아닌가.

지구 온난화 다큐 한 편 주의해서 보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우울할 따름이다. 그래도 어쩌랴, 당장 이 모든 걸 바꾸어서 살기는 난감한 노릇 아닌가. 그럴 때 숲체원이나 자연휴양림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돌아와야 할까?

둔내역에서 택시를 타고 횡성숲체원 정문에 내려 걸어 들어가니 천하대장군 형상에 '호연지기' 글자가 지하여장군 형상에 '홍익인간' 글자가 새겨진 장승이 눈에 탁 들어온다. 마을을 지키는 신목(神木)인 장승 위로 하늘이 이어지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목으로 우러러보겠는데 장승보다 더 높이 올라간 낙엽송이 하늘을 받치고 있어서 그런지 그곳 장승이 초라하게 묻히는 느낌이 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왜 호연지기와 홍익인간일까?

호연지기(浩然之氣) 풀이는 이렇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호연지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맹자는 "호연지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호연지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기운이다. 이 기운은 의로운 일을 할 때마다 생겨나서 쌓이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한다면 곧 사라지고 만다"고 했다. 그렇다면 횡성숲체원에서 가져가야 할 호연지기의 근원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숲의 기운인가? 그럴 것이다. 도심과 달리 횡성숲체원 건물들은 다 나무 아래 놓여 있으니까 말이다.

호연지기와 함께 가져가야 할 덕목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면 그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게 숲이라는 걸 알고 숲에 고마워하면서 서로 돕고 살라는 가르침을 가지고 가면 되는가? 더불어 숲속의 나무들이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잘 인지해 사람들끼리만 나누지 말고 모든 생명체에게도 나눌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해 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는 말인가?

호연지기와 홍익인간 글자를 보여주려고 한 의도는 쓴 사람이 정확히 알 것이다. 그래도 숲에서 호연지기와 홍익인간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터득해 간다면 좋은 일 아닌가. 무엇이라도 배워 가면 좋은 숲, 천천히 걷는데 입구에서 본 낙엽송들이 군락을 이루는 모습이 제일 눈에 띄는 것 같다.

일본잎갈나무(낙엽송) 군락.ⓐ김서정 작가

숲이 제일 넓은 지역이 강원도인데, 그 숲에서 유독 많이 보이는 게 낙엽송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강원도는 숲도 많지만 탄광도 많았다. 그래서 갱도에 쓰는 나무가 필요했는데, 단단한 소나무와 참나무를 주로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나무들이 베어졌고, 그 자리에 빨리 자라는 낙엽송을 인공으로 조림하게 되었다.

낙엽송(落葉松)을 한자로 풀면 낙엽이 지는 소나무가 되는데 더 알고 싶어 도감을 보면 낙엽송이라는 나무는 없다. 일본잎갈나무가 정확한 이름이다. 말 그대로 조림을 위해 일본 원산 잎갈나무를 수입해 대거 심은 것이다.

잎갈나무는 소나뭇과이지만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진다. 그래서 잎을 가는 나무, 잎을 바꾸는 나무라고 해서 잎갈나무 혹은 이깔나무라고도 부른다. 한반도 잎갈나무는 백두산과 개마고원 북부에서 원시림을 이루는 대표적인 수종이다. 즉 남한에서는 보기 어렵다는 건데, 오대산 상원사 입구에 보면 250년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잎갈나무가 15미터 정도로 자라고 있다.

우리의 잎갈나무와 일본잎갈나무는 비슷해 구분이 어려운데 잎갈나무는 솔방울의 비늘 끝이 곧고, 일본잎갈나무는 솔방울의 비늘 끝이 뒤로 젖혀 있다. 잎갈나무잎은 뒷면이 녹색이고, 일본잎갈나무잎은 뒷면이 흰빛이 도는 녹색이다.

그렇다면 도감에 있는 일본잎갈나무라고 부르지 않고 왜 낙엽송이라고 부를까? 이는 탄광 갱목은 물론 철도 침목, 전봇대로 쓰였고, 1960년대에 전국 산에 가장 많이 심은 나무로 조림 면적의 17퍼센트를 차지했다는 이 나무를 일본잎갈나무로 부르고 있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낙엽송으로 부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뿌리가 드러난 나무.@김서정 작가

낙엽송 군락을 지나 태기산으로 가는 임도를 걷다 보면 절개지에 드러난 나무뿌리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그 모습에 살짝 충격을 받는데 그건 지상에 드러난 줄기의 길이만큼 뿌리가 아래 뻗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1미터 정도도 못 미치게 내려가면 돌덩이에 막혀 옆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옆으로 길게 뻗어서 위의 흔들림을 잡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언뜻 얇은 깊이에 위태로움을 느끼면서도 웬만하면 쓰러지지 않고 하늘과 땅을 잡고 있는 기다란 나무들에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완벽한 준비를 갖추지 않은 등산 차림에도 강원도 숲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는 숲체원의 장점은 무엇일까?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안전이 보장되는 집에서 바깥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인간은 놀라움이라는 감각(Sense of wonder)을 느끼게 된다.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것이 전제돼야 세상이 놀라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여기에 힌트가 있는 것 같다. 주위가 아무리 험해도 안전을 보장받는 시설물이 바로 곁에 있다 보니 그곳 모든 게 놀랍고도 신비롭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안전 거주지가 없다면 숲은 어떻게 느껴질까?

<나를 부르는 숲>에서 말한 숲은 다음과 같다. "사실 숲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방울뱀, 물뱀, 독사, 살쾡이, 곰, 코요테, 늑대, 멧돼지, 거기다가 거친 곡주를 너무 많이 마셔 약간 돈 산 사람과 스컹크, 너구리, 다람쥐, 무자비한 불개미, 흑파리, 독이끼, 독참나무, 옻나무, 불도마뱀... 그뿐만이 아니다. 양순할 것 같은 사슴들도 뇌에 기생충이 파고들어 정신이 돌 경우에는 사람들을 향해 마구 돌진한다. 말 그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거기에서는 당신에게 일어날 수가 있다."

그렇다. 본래 숲은 위험하다. 생존을 위해 두려움과 공포심을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한다. 숲을 아름답게 칭송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숲을 우리 위주로 재편해 나가는 것 말이다. 그래서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도 숲에 가자. 숲이 위험하다고 여겨지면 안전한 숲체원에서 가서 숲의 참 의미를 열심히 사유해 보자. 거기서 얻어지는 호연지기와 홍익인간을 자꾸 떠올리며 모두가 상생하는 지구를 최선을 다해 상상해 보자. 그럼 지구 위기가 줄어들지 않을까!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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