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시각④ ]우리의 적(敵)은 북한...

이장호 승인 2023.03.19 17:54 | 최종 수정 2023.07.21 19:04 의견 0
북한이 19일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있다=연합뉴스 사진

[뉴스임팩트=이장호 전 정훈병과 중령]내가 장교가 되고나서 가장 많이 듣고 썼던 단어가 바로 적(敵)과 북한이었다.

군인으로서의 숙명이랄까,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심하거나 물어본 적이 없는 존재였다. 군대와 군인이 존재하는 당위성의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고, 너무나 명확한 악(惡)이었기 때문에 심지어 빨간색으로 표기했다.

특히, 1990년대는 북한과의 관계가 상당히 적대적이었고, 군사적인 충돌과 위협 수위가 높아 북한의 모든 행동은 절대 용남해서도 안 되는 금기와 같았다. 정치적으로 좌파, 좌경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일생 동안 낙인 찍혀 사는 힘든 시기였다. 민주화 학생운동도 북한의 지령을 받은 불순한 세력들에 의해 조종된다고 최루탄으로 탄압했던 시절이었다.

특히, 군에서는 병사들을 대상으로 북한과 좌경세력의 실체에 대한 정신교육이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매주 수요일은 물론 집중교육을 위한 별도의 시간도 편성해 운영할 정도로 군에서는 북한이라는 적에 대해 많은 교육을 했다.

그런데, 적이라는 북한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TV나 영화 속에서 보여진 것이 전부다. 아마 판문점에 근무하지 않고서는 적이라고 해서 전쟁이 나면 서로 싸우게 될 북한군은 정작 본적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북한의 존재에 대한 평가가 정치 이념에 따라 달라진 것도 우리가 북한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도외시한 이유가 된다. 최근 국방부가 발간한 ‘2022 국방백서’에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이후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발간된 2018년과 2020년 국방백서는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보다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적었다.

6.25전쟁이 엄연한 역사이고, 북한의 군사위협이 계속돼 왔음에도 우리 스스로 북한에 대해 너무 관대하게 평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적이 언제는 적이 아니고, 언제는 적인 혼란이 있었다는 얘기다.

하긴 장교인 나도 2012년 한미연합사에 근무하면서 판문점에서 북한군을 처음 봤다. 군 생활 22년 만에 나의 적을 직접 본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상당히 충격적이고 심지어 오싹하기까지 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북한군이 나의 적이구나”하는 생각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했다, 북한군 병사지만 실재하는 적을 직접 봤다는 것만으로도 군대와 군인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회의에서 만났던 북한군 장교의 그 서슬퍼런 눈빛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때 만났던 북한 장교가 살아있는 교보재로서 북한군에 대해 교육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정말 가까이서 적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큰 의미가 되었다.

북한군이 포사격 훈련을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파견 오면 가장 먼저 판문점과 제3땅굴 등 전방 견학을 한다. 왜 한국에 주둔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실제 보여주는 교육이다.

이스라엘은 한동안 장교·부사관 임관식과 신병훈련 수료식이 마사다 요새에서 열렸다. 그들은 “마사다는 두 번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라는 비장한 애국 선서를 하면서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군 생활을 한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군은 북한이라는 현존하는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서 많은 교육과 훈련을 한다. 그러나 정작 병사건 간부건 북한군을 본 경우는 거의 없다.

적도 본 적도 없다보니 적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내가 어렸을 때 교과서에는 북한 사람들은 뿔이 달린 도깨비였다. 우리가 북한을 TV를 통해서 본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을 정도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보면 더 명확해진다.

연합사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것이 최소한 부사관과 장교는 양성과정이나 임관 전에 반드시 판문점에 와서 북한군을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책적으로 추진해보면 분명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적을 보지도 않고 모르면서 적을 이기겠다는 것이 합당한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知彼知己百戰不殆”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세상이 디지털화가 되고 첨단 무기가 개발되어도 적은 변함없이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다. 그래서 군대가 존재한다. 더욱 잘 하는 군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 중에 적을 명확하게 아는 것도 포함된다.

적을 잘 알자. 그러려면 한 번 보면 좋지 않을까? 내 적을 내가 확인하겠다는데 누가 토를 달까?

[글쓴이 이장호 중령]

1990년 육군사관학교 46기로 졸업해 정훈장교로 30여 년간 복무했다. 고려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음. 앙골라UN평화유지군 파병 등 3회의 해외 파병과 미국 공보학교 졸업, 20여 회의 외국 업무 경험 등 군 생활을 통해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쌓아 군 업무에 활용해 나름 병과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며 전역 후 군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애정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현재는 기자, 요양보호사 등의 일을 하며 우리 사회의 생활상에 대해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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