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엘리자베스2세 사망과 英연방의 새드엔딩

최진우 승인 2022.09.13 17:05 의견 0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ytn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부친 조지 6세가 사망하고 영국 여왕 자리를 물려받은 엘리자베스2세가 지난 8일 향년 9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1952년 2월 25세의 나이로 즉위했으니 재위기간만 70년7개월에 달한다. 역사적으로 엘리자베스2세 보다 더 오래 권좌를 누린 군주는 프랑스의 루이14세(72년3개월) 뿐이며 여성군주로서는 최장수 군주 기록에 해당한다.

그의 재위기간 중 영국총리는 2차 세계대전을 이끈 윈스턴 처칠을 비롯해 사망 이틀 전 임명한 리즈 트러스까지 총 15명에 달한다. 미국 대통령은 트루먼에서부터 바이든에 이르기까지 13명에 달한다. 현대적 입헌군주제에서 엘리자베스2세는 정치적인 실권은 없었지만 그를 빼놓고는 영국 현대사와 세계사를 논하기가 힘들 정도로 절대적 위상을 차지한 것이 사실이다.

엘리자베스2세가 재위 기간중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노력한 것은 영국연방을 지키려는 시도였다. 해가지지 않는 제국에서 2차 세계대전 후 슈퍼파워로 부상한 미국에 밀려 영국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영국연방을 부여잡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영국연방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32개 국가에 달한다. 그는 재위기간 중 영국연방 국가를 빠짐없이 순방하며 그를 군주로 모시는 영국연방국가들을 결속시키려고 노력했다. 캐나다는 무려 22차례나 방문했고 영국연방 국가 방문 횟수는 150여 차례에 달할 정도였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 군주제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영국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군주제를 고수하는 15개 국가를 비롯해 재위 중 공화제로 전환한 다른 17개 국가 등 32개 영국연방 모두에서 여왕이라는 칭호와 함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2세 사망 후 영국연방에서 탈퇴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카브리해 섬나라 앤티가 바부다는 3년 내 군주제 폐지 및 공화국 전환에 대한 국민투표를 추진 중에 있으며 자메이카, 바하마, 벨리즈 등에서도 군주제 폐지를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영국연방에서 캐나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 호주에서조차 군주제 폐지 논의가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같은 논란과 관련해서 “지금은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의와 존경을 표해야 할 때”라면서, 자신의 첫 임기 동안에는 공화정으로의 전환을 묻는 국민투표를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해 했다.

엘리자베스2세 사망을 계기로 영국연방이 곧바로 해체의 길을 들어선다거나 와해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정신적 구심점이었던 그의 부재는 결국 많이 느슨해진 영국연방을 더욱 느슨하게 만들거나 아예 다른 형태의 연방형태로 바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엘리자베스2세 뒤를 잇는 찰스3세 국왕은 엘리자베스2세만큼 인기가 없으며 군주로서의 영향력 역시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왕세자 신분으로 무려 64년을 지내온 그는 1981년 고 다이애나비와의 결혼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카밀라 파커볼스와의 불륜사실이 알려지면서 영국인은 물론, 세계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결혼 후에도 카밀라와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찰스3세는 결국 1996년 다이애나비와 이혼했고, 그 이듬해 다이애나가 파파라치를 피해 달아나던 중 교통사고로 프랑스에서 숨지자 국민적 밉상으로 등극했다. 그는 국민불륜녀라는 비난을 받고 있던 카밀라와 2005년 결혼하면서 영국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왕세자와 결혼했으면 당연히 왕세자비로 불려야 하지만 카밀라를 왕세자비로 부르기를 거부하는 국민적 반대여론에 부닥쳐 카밀라는 스스로를 콘월 공작부인으로 칭하며 몸을 낮췄다. 콘월 공작부인은 왕세자의 공식 부인에게 붙여지는 왕세자비는 물론, 체스터 백작부인이라는 호칭보다는 아래로, 귀인 중에서는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신분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국민의 반감을 고려해 몸을 한껏 낮췄던 카밀라지만 이제는 남편 찰스3세가 영국 국왕에 공식 즉위하면서 왕비라는 호칭을 받게 된 것이다. 찰스3세가 영국국왕 자리에 올랐지만 그와 왕비를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엘리자베스2세는 지난 2월 여왕 즉위 70년을 기념하는 행사(플래티넘 주빌리)에서 “찰스3세 왕세자가 왕이 되면, 그의 아내인 카밀라가 왕비 칭호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왕은 또 “아들 찰스3세가 왕위에 오르면 대중들이 나에게 보내준 것과 같은 지지를 카밀라에게도 줄 것이며, 카밀라 또한 왕비로서 충성을 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2세의 이례적인 언급에도 대중은 여전히 찰스3세 국왕과 카밀라를 바라보면서 비운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비의 환영을 겹쳐서 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만큼 다이애나 비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이제 엘리자베스2세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공식적으로 찰스3세 국왕의 시대가 열렸다. 찰스3세는 모친 엘리자베스2세와 달리 대중의 지지가 확실히 떨어지며, 정치적 영향력이 약한 그가 영국연방을 통합시킬 힘 또한 많이 부족해 보인다.

그의 재위기간 중 영국연방에서 탈퇴하거나 공화제로 바꾸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터져 나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64년을 왕세자로 살다 74세 나이로 국왕 자리에 오른 찰스3세의 밝게 웃는 모습은 늙어가는 대영제국의 새드 엔딩을 보여주는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뉴스임팩트 최진우 wltrbriant652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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