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꿈 4편] IMF, KAI가 탄생하다

이상우 기자 (mahadhar@naver.com) 승인 2020.03.15 13:49 의견 0

1998년 삼성·대우·현대 통합

[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가 밀어닥쳤다. 정부는 빅딜 정책을 내세워 항공업을 재편하려 했다. 기업들은 정부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주 물량 부족, 수익 모델 부재도 고민거리였다.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 현대우주항공(이하 3사)은 통합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기로 했다. 1998년 9월. 3사 대표는 항공통합법인을 세우기로 합의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통합 사무국이 서울 중구 서소문동 해동화재빌딩에 차려졌다. 문창모 대우중공업 영업기획팀 차장, 김준명 삼성항공 기획조사팀 과장, 신수봉 현대우주항공 위성영업팀 차장이 파견돼 회사 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이후 3사는 인사 담당 직원과 이사급 임원들을 보내 사무국 인력을 보강했다. 3사 사장단과 사무국은 임인택 전 교통부 장관을 항공통합법인 초대 사장으로 내정했다.

임인택 전 장관은 서울대 법대와 고시 행정과(13회)를 나온 뒤 상공부, 교통부에서 커리어를 쌓은 정통 관료 출신이다. 이제 걸음마를 떼는 항공통합법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려면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내정이었다.

1998년 10월 항공통합법인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면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란 이름을 썼다. 한 달 후 임인택 내정자가 KAI 초대 사장에 공식 임명됐다. KAI가 세상에 탄생한 것이다.

정부는 1999년 4월 KAI를 고정익, 회전익 항공 분야 전문화업체로 지정했다. 고정익은 움직이지 않는 날개, 회전익은 움직이는 날개다. KAI는 전문화업체 지정으로 군수 항공 분야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보장받았다. 전문화업체가 군의 항공무기체계 관련 연구·개발, 기술 도입, 생산, 개조 등을 전담 수행하기 때문이다.

KAI는 당초 목표였던 외자 유치에선 실패했다. 록히드마틴, 보잉과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 등이 관심을 보였지만 투자액 삭감, KAI 항공기와의 경쟁 보장, 부채비율 30% 이내 억제 등 요구 조건이 과도했다.

KAI는 외국 항공업체들과의 협상을 접고 독자 생존을 선택했다. KAI 출범 당시 조직은 임인택 사장 밑에 관리본부, 영업본부, 사천공장, 창원공장, 서산공장(2000년 현대자동차에 매각), 우주개발연구센터로 이뤄졌다.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은 분사됐다. 도담시스템스란 벤처회사였다. 항공기 개발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게 KAI 뜻이었다. 도담시스템스는 항공기 조종시뮬레이터, 3차원 영상응용제품 등을 제작해 KAI에 납품했다.

2000년 하반기 KAI는 1회 공채를 시행했다. 경쟁률이 401대 1에 달했다. 1기들은 공군 외 고정 고객이 없었던 KAI에 들어와 기반을 닦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KAI의 연 매출액은 3조여원에 이른다. 아시아, 중동, 북아메리카, 유럽, 남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사가 1기들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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