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이어지면서 주목받은 개념이 있다.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경제 안보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발전시키고, 자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제적 이익을 형성하고, 비경제적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물질적 자원을 소유하는 능력이다. 경제 안보를 실현하는 수단이 수출 통제와 수입 규제를 아우르는 국제 제재, 국내 생산자 우대, 연구·개발 강화, 공급망 다변화, 국제 파트너십 형성 등이다.
경제 안보가 미국, 중국만의 현안은 아니다. 한국도 2021년 중국발 요소수 부족 사태, 올해 일본발 라인 사태를 겪었다. 게다가 내년 1월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다. 경제 안보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뉴스임팩트가 국제 제재 전문가로 여러 기업에 자문해 온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신동찬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나왔다. 사법연수원 26기 출신이다.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을 지냈다. 율촌 국제제재팀장을 맡고 있다.
ㅡ국제 제재와 경제 안보 전문가로 손꼽힌다. 경제 안보 쪽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뭔가.
"처음부터 경제 안보 업무를 한 건 아니다. 일을 좇다 보니 관여하게 됐다. 결정적 원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다. 리먼브라더스부터 줄줄이 넘어지지 않았나. 하필 제 주요 고객이 글로벌 투자은행 부동산 부문이었다. 2009년까지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부동산 정리 작업을 자문하느라 정신없이 일했다. 2010년부터 일이 딱 끊겼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데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포괄적 이란제재법을 발표했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통해 이란 핵 개발을 저지하려는 의도였다."
※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2차 제재)은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기업, 금융 기관, 정부를 일괄 제재한다는 뜻이다.
"오바마 정부의 강경책으로 이란과 거래하는 한국 건설사, 정유사, 종합상사들이 난리가 났다. 그땐 2차 제재를 아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율촌 경영진이 제게 2차 제재를 연구해 보라고 했다. 제가 어렵게 미국에서 경제 안보에 식견이 있는 변호사를 찾아내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그분을 한국으로 초빙해서 1주일간 주요 기업을 돌며 2차 제재를 설명했다. 마지막 강연 때 첫 번째 일감을 받았다. 그렇게 경제 안보 업무를 시작했다."
ㅡ2012~2015년 영국 로펌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아부다비 사무소, 트라워즈 앤 햄린스 두바이 사무소에서 파견 근무를 한 것도 경제 안보 업무 때문인가.
"그렇다. 국제 제재는 계속 업데이트된다. 제재가 계속 강화되니까. 매번 외국 전문가에게 의지할 수도 없지 않나. 꾸준히 공부하면서 이슈를 따라가니 율촌 경영진이 중동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이란보다는 아랍에미리트(UAE)가 적합하다고 판단해 UAE에 진출해 있는 영국 로펌으로 갔다."
ㅡ지금까지 담당한 업무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국제 중재 쪽에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네덜란드 회사가 한국 기업과 합작 투자를 했다가 경영권 분쟁이 터졌다. 한국과 해외에서 소송전을 했다. 저와 율촌은 네덜란드 회사를 대리했다. 2006년 가처분 심문 때 한국 기업 측이 합작 투자 계약서가 위조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계약서 원본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합작 투자 계약은 1992년 체결됐기에 문서를 찾긴 어려울 거라고 봤다. 그런데 네덜란드 회사 금고에 계약서 원본이 있었다. 네덜란드의 철저한 기록 관리에 놀랐다."
"생각지 못 한 계약서 원본이 법정에서 제시되니 한국 기업 측이 매우 놀랐다. 심지어 해당 기업 회장이 계약서를 가져가려고 했다. 그분이 당황했던 것 아니겠나. 국제 중재를 거쳐 네덜란드 회사의 승리로 결론 났다. 재밌는 건 승소를 이끌어줬는데도 네덜란드 회사가 수임료 문제를 제기하더라. 그 때문에 다투기까지 했다. 더치페이란 말이 이래서 나왔구나 싶었다."
※ 더치페이는 각자 낸다는 의미다. 더치(Dutch)는 네덜란드 사람을 가리킨다. 17세기 영국이 네덜란드와 치열한 식민지 경쟁을 하다가 더치페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ㅡ트럼프 당선인이 공약대로 관세 부과, 친환경 정책 폐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 폐지,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시행할 거라고 보나.
※ IRA는 전기차 세액 공제, 청정에너지 산업 지원, 의료보험 확대, 법인세 인상을 담고 있다. 급등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려는 목적이다. 2022년 8월 발효됐다. 칩스법은 미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 연방의회는 2022년 7월 칩스법을 승인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어떤 정책을 펼 거라고 확답할 순 없다. 그건 미래 예측 영역 아닌가. 짐작은 가능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7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1기 정부를 이끌었고 이번에 복귀한다. 트럼프 2기 정부를 전망하려면 1기에 어땠나 보면 된다. 트럼프 1기 정부는 이란 핵 합의 파기를 비롯해 하고자 하는 일은 망설이지 않고 했다. 이번엔 상하원까지 장악했으니 더 세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
ㅡ한국 기업은 트럼프 컴백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너무 비관할 건 없다. 트럼프 당선인이 IRA나 칩스법을 정말 폐지해버리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울 이유 역시 사라진다. 한국 기업의 미국 사업장 대부분이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남부에 있다. 한국 기업들이 떠나겠다고 하면 공화당 의원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꾸린 미국 대관 조직까지 움직이면 힘든 여건을 호전시킬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 25% 부과는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저택에 찾아온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관세를 올리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 부분만큼은 확고하다는 거다. 트럼프 당선인이 줄곧 불만스러워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개정 논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ㅡ트럼프 당선인으로 인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구도가 바뀔 듯한데.
"트럼프 당선인은 러시아 제재를 완화하자는 입장이니 그리 될 가능성이 있다. 이때 유럽연합(EU)이 미국을 따라갈지는 미지수다. EU로선 자기 앞마당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제재 축소를 택하기 힘들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섣불리 우크라이나 손을 들어주기보다 돌아가는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ㅡ트럼프 당선인의 친(親)이스라엘, 반(反)이란 기조가 중동 평화에 도움이 될까.
"어차피 중동은 수십 년째 해법이 없는 상태다. 당장 조 바이든 정부가 중동이 안정됐다고 했다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지 않았나. 어찌 보면 트럼프 당선인 식으로 하는 게 해법일 수 있다. 그는 1기 정부 시절 아브라함 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UAE와 이스라엘의 국교를 정상화했다. 중동에선 정말 놀라운 사건이었다. 제가 UAE에서 일할 땐 이스라엘에 한 번 간 사람은 UAE 입국이 안 될 만큼 적대감이 심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중동에서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ㅡ이란이나 중동 무장 조직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국제 사회의 컨센서스를 자꾸 부정해서 중동 평화가 멀어지는 측면도 있는 듯한데.
"이란도 문제지만 무장 조직이 저지르는 테러를 보면 13세기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어쌔신(암살자)이 연상된다. 그만큼 시대착오적이란 거다. 하지만 외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강제로 이식하려 하면 반발만 커진다. 테러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자유민주주의 확립은 내부자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 둘 수밖에 없다고 본다."
ㅡ경제 안보에서 중요한 업종이 국방력과 직결되는 방위산업이다. K방산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
"K방산이야 2년째 붐(성황) 아닌가. 한국 방산업체들이 잘하고 있다. 다만 걱정은 있다. 무기는 사람을 살상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만약 K방산 무기가 교전에 쓰여서 민간인들이 대거 죽거나 다치면 국제적으로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한국 방산업체들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직 준비된 것 같진 않다. 한국 방산업체들이 평판 관리 대책을 세우고 갑작스러운 여론 악화를 극복할 수 있는 컨틴전시 플랜(비상 대응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ㅡ지난 2월까지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센터(이하 센터)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센터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 보완할 점이 있다면.
"센터가 2022년 출범했다. 그 전엔 경제 안보 조직이 없었다. 뒤늦게나마 설립된 게 다행이다. 센터는 리뷰를 발간하면서 언론과 국민에게 경제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초창기인 만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도 괜찮을 거다.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같은 나라와 비교해 한국이 보유한 경제 안보 역량이 떨어지긴 한다. 그렇지만 세계를 흔들어 본 국가들과 한국을 일대일로 견주는 건 무리 아니겠나."
ㅡ경제 안보 분야로 진출하려는 후배 변호사들에게 조언한다면.
"무엇을 하든 우수한 법률가, 뛰어난 변호사가 되는 게 먼저다. 결국 고객은 변호사에게 리걸 마인드(법적 사고)를 원한다. 기본에 충실해야 뻗어나갈 수 있다는 마음을 먹고 리걸 마인드 구축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