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프로필
1959년생.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외무고시 19회.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외교부 인사기획관과 북미국장,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역임.
ㅡ중국과의 외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우리 사회엔 중국을 제대로 못 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중국은 10년 단위로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왔다. 2000년대 초반까진 우리를 정중하게 대했다. 협력 파트너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후 고압적으로 변했다. 지금은 중국이 툭하면 우리를 내리누르려 한다. 한중관계가 소원해진 게 우리 잘못인가. 중국이 변한 거다."
"호주의 대중 외교를 배울 필요가 있다. 호주는 우리 이상으로 중국과의 교역에 의존한다. 그렇지만 중국이 어떤 시비를 걸든 호주가 동요하거나 저자세로 나가지 않는다. 호주 외교관들은 '중국과 잘 지내고 싶지만 관계가 나빠진 게 우리 책임은 아니다. 친구가 되려면 중국과 호주 모두 노력해야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가가선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니 중국이 흔들어 봐도 안 되겠다고 여겼는지 호주에 유화책을 쓰더라."
ㅡ진보 진영이었던 문재인 정부는 물론 보수 진영의 박근혜 정부도 중국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박근혜 정부는 중국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이 중국어로 연설하고 천안문 망루에 올라가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압박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참 나이브(naive·순진한)했던 거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를 왜 도와주나. 한반도가 갈라져 있고 북한이 제한적 핵을 보유한 현 상황이 자기네 세계 전략에 부합하는데."
ㅡ일각에선 경제 때문에라도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앞서 말했듯이 외교는 생존이 첫 번째 목표여야 한다. 중국이 우리 생존을 건드리는 데 경제적 이득을 찾는 건 우선순위 분간을 못 하는 거다. 그리고 중국과의 교역은 예전처럼 재미를 보기 힘들다. 중국이 우리 제품을 많이 사 간다던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뷰티(화장품) 사업도 구조적 무역 적자가 시작됐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알리바바, 테무 같은 중국 온라인 쇼핑 업체는 아예 우리 시장과 기업을 초토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한 나라가 아닌 문화이자 대륙이다. 경제특구, 해안 지방, 배후 지역이 1~5선 도시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오겹살 국가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저렴하면서 풍부한 노동력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할 수 있는 데다 역사적으로 고도의 기술을 발전시켜 온 문명이 중국이다. 중국을 상대할 때 쉽게 이익을 챙겨올 수 있다고 속단하거나 보고 싶은 현실만 봐선 안 된다."
※ 1선 도시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처럼 인구가 1000만명이 넘고 경제가 크게 발달한 도시다. 2선 도시는 500만명 이상의 인구를 보유하고 경제력도 있는 항저우, 난징, 충칭 등을 일컫는다. 3선 도시는 인구 300만~500만명의 우루무치, 구이양 등을 뜻한다. 4, 5선 도시는 인구나 경제 규모가 1~3선에 비해 부족한 나머지 도시들을 가리킨다.
ㅡ중국이 대만을 침공할까.
"양안전쟁 발발 가능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시진핑은 진시황처럼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겠다는 야망이 있다. 대만을 합치면 시진핑은 역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통일한 통치자가 된다. 2027년이 중국 인민해방군 창군 100주년인 점도 변수다. 강한 전력을 가진 군대는 적당한 명분이 갖춰지면 군사력을 써먹고 싶어 하는 법이다. 더불어 시진핑 주변에 있는 모험주의자들이 양안전쟁을 부추길 수 있다. 그들은 중국과 가까운 금문도(대만 푸젠성 진먼현)를 점령해 대만 정부를 굴복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ㅡ우리는 양안전쟁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양안전쟁이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양안전쟁으로 대만해협이 막히면 우리는 물류를 실어 나를 수 없다. 대만이 생존해야 우리도 숨을 쉴 수 있단 얘기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대만에 힘을 보태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 연합 훈련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미국, 한국, 필리핀, 베트남 등이 대만을 충실히 뒷받침할 때 남중국해에서 세력 균형이 이뤄져 중국이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ㅡ중국과의 대립을 각오해야 한단 견해인가.
"우리가 중국에 종속될 것이 아니라면 할 일은 해야 한다. 아울러 일은 타이밍에 맞게 해야 한다. 자꾸 미루면 문제만 커진다. 어렵게 살던 후진국 시절엔 오히려 우리가 강단 있는 외교 정책을 폈다. 선진국이 되면서 덩치는 커졌는데 외교 스케일은 쪼그라들었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서 우리 자리가 없어진다."
ㅡ한미동맹은 계속 굳건히 가져가야 한다고 보나.
"당연히 한미동맹을 유지해야겠지만 미국과의 관계도 냉철하게 살펴야 한다. 1953년 한미동맹이 수립된 이후 미국은 우리의 후견인 노릇을 해왔다. 하지만 더 이상 한국 안보를 100% 책임지진 않겠다는 게 미국 입장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우리에게 안보 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거다."
ㅡ그러잖아도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방위비 분담금은 설명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단 주한미군은 자기 인건비를 100% 감당하고 있다. 우리가 내는 건 군무원 인건비, 군수 지원비, 군사 건설비 일부다. 물론 부담 비율이 점점 올라가곤 있다. 다만 아무리 트럼프라도 갑자기 방위비 분담금을 3~4배 올릴 순 없다. 핵심은 돈이 아니다. 한국이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선 안 된다고 트럼프가 주장한다는 거다."
"이게 현실이라면 우리도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자꾸 미국만 쳐다볼 게 아니라 자주국방을 해보자는 식으로 말이다. 전시작전권도 전환하고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 물질과 폭탄도 점차 준비해야 한다."
ㅡ전시작전권 전환은 한미연합사령부 해체와 한미동맹 약화를 불러와 전쟁 승리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의 자체 핵무장은 미국이 반대하지 않겠나.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계속 미국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전시작전권을 가져와 우리 군의 작전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자주국방이 된다. 한미연합사령부 역할은 유사시 유엔사령부로 대체하면 된다. 우리 군의 정찰 장비가 미군보다 모자라는 측면은 있다. 그건 보충하면 된다. 군사 위성 발사로 우리 군의 정찰 능력도 향상되고 있다."
"당장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진 못한다. 그래도 일본처럼 핵 물질을 보유하고 있다가 유사시 조립만 하면 되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미국은 핵확산을 걱정해 우리의 핵 개발을 반대할 거다. 논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동맹국으로서 자주국방을 해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건데 왜 막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ㅡ혈맹으로 불리는 미국에 대해 냉정한 시각을 견지하는 듯하다.
"우리 일은 우리가 처리한다는 결기를 가져야 한다. 외교부 국장을 하면서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 개정을 담당할 때 미국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는 미사일 사거리를 300㎞에서 800㎞로 늘리겠다고 하니까 미국에서 싫어할 테니 500㎞만 하자고 하더라. 반대를 뚫고 사거리를 800㎞로 만들었다. 미국 의견을 듣기도 전에 미리 미국 입장을 고려하겠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에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때 북한을 치려는 우리를 미국이 말렸다. 연루의 위험에 빠지지 않겠다는 거다. 미국이 우리를 외면하지 못하게 하려면 동맹국으로서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가 안보를 프리 라이딩(free-riding·무임승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때 우리의 전략적 가치가 올라간다."
※ 외교 이론에 방기(abandonment)와 연루(entrapment)의 딜레마가 있다. 강대국과 동맹을 맺은 약소국은 안보 위기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방기의 위험을 안고 있다. 강대국엔 동맹국인 약소국 때문에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연루의 위험이 있다.
ㅡ미얀마 민주화는 이뤄질 수 있을까.
"국제사회가 움직이지 않는 한 미얀마는 실패 국가로 간다. 정상적인 정부가 없어서다. 미얀마를 통치하는 군부가 국제사회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반군은 점점 세력을 불려 나가고 있다. 미얀마는 자원이 많은 데다 땅도 넓어서 정치만 안정되면 제2의 베트남이 될 수 있는 나라다. 그 반대로 가고 있어 안타깝다."
"미얀마의 혼란엔 미국도 책임이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 군부와 타협할 여지를 없애 버렸다. 그러니 군부가 강압 통치 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하질 못한다. 학교에서 비행 청소년을 바로잡을 때 달래기도 해야지 체벌만 하면 비뚤어지기밖에 더 하나."
ㅡ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비롯한 미얀마 민주화 세력이 군부에 밀린 이유는 무엇인가.
"수치와 민주화 인사들은 미얀마 민주주의 확립에 큰 공을 세웠지만 통치 역량이 너무 떨어졌다. 오랜 기간 수형 생활을 하면서 투쟁하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걸 몰랐다. 미얀마 대사 시절 수치를 보필하는 최측근들을 여러 차례 만났다.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젊은 인재들을 써라, 경제 발전에 매진하라고 조언했다. 그들은 독재정권 유력자 자녀나 친인척을 기용할 순 없다며 거부감을 보였다. 결국 정치도 경제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군부에 백 태클(back tackle·축구에서 상대편 선수의 뒤쪽에 뛰어들어 넘어뜨린 후 공을 기습적으로 빼앗는 동작) 기회를 줘버린 거다."
ㅡ유엔 같은 국제기구가 분쟁 조정에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를 설계한 미국부터 국제기구를 싫어하는 판이다. 국제기구에 무슨 힘이 실리겠나. 다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도 자기네 이익만 추구한다. 세계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상론이다. 국제기구는 예전에 비해 쓸모가 많이 없어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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