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덩샤오핑의 유언과 시진핑의 조급증

최진우 승인 2022.05.23 15:21 의견 0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mbc튜스 유튜브 영상캡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은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중국 지도자였다.

1983년 그는 중국을 방문 중이던 폴 오닐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의 만남에서 “대만이 조국으로 돌아오면 그곳의 현실과 제도를 존중하겠다”고 말하며 대만과 통일이 되면 서로 다른 두 개의 체제를 공존시키겠다고 밝혔다.


덩샤오핑의 일국양제 개념이 처음 현실로 나타난 것은 홍콩이었다. 1980년대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는 홍콩 반환을 늦춰줄 것을 중국에 요구했고, 덩샤오핑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영국이 홍콩반환을 늦출 경우 당장 인민해방군을 보내 홍콩을 점령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덩샤오핑은 그러면서 50년간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며 홍콩을 일국양제 체제로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덩샤오핑의 홍콩 사랑은 유별났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말년에 가장 큰 소원 중 하나가 자국으로 반환되는 홍콩 땅을 밟는 것이라고 수차례 밝혔지만, 홍콩반환 5개월을 앞두고 숨을 거둬 반환 장면을 목격하지는 못했다.홍콩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덩샤오핑의 유해는 화장되어 홍콩 앞바다에 비행기로 뿌려졌을 정도였다.

덩샤오핑에게 대만과의 통일, 홍콩반환은 그가 줄곧 표방해온 하나의 중국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 역대사업이었다. 그렇지만 대만에 대해서는 덩샤오핑은 비교적 여유를 갖고 접근했다.

1983년 중국 지도부와 관영언론을 향해 대만을 해방한다는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 것을 지시한 점이나, 100년간 대만과 교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점 등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내심을 갖고 대만과의 통일문제를 접근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덩샤오핑은 유언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후대에 당부했다. 향후 50여 년 동안은 국제 사회에 섣불리 나서지 말고 인내하며 조용히 힘을 키우라는 유언이었다.
덩샤오핑이 사망한 해를 기준으로 본다면 중국은 2047년까지 나대지 말고 조용히 힘을 길러야 하지만, 최근 중국의 움직임을 보면 이미 덩샤오핑의 유언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홍콩에 대한 약속부터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덩샤오핑은 홍콩반환이후 50년간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최근 친중파로 유명한 존 리가 홍콩정부의 1인자인 행정장관 자리에 앉으면서 중국과의 동질화 현상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존 리는 홍콩 정무부총리 시절 홍콩민주화 운동을 강력하게 진압했던 인물이다. 그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단독 출마해 94%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선거위원회의 간접선거로 치러지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선거위원회가 이미 친중파 인물들로 물갈이되면서 존 리의 당선이 예견되었던 일이다.

그는 당선 직후 “일국양제는 계속 이행되어야 한다”고 립서비스를 했지만 실상은 중국정부에 적극 협조하는 등 중국의 주권과 국가안보에 정책적 방점을 찍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홍콩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일련의 탄압과, 캐리 람 행정장관에 이어 대표적인 친중파인 존 리를 행정장관에 앉히는 과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입김과 중국 공산당의 실질적인 공작이 개입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왜 이렇게 홍콩을 조기에 중국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덩샤오핑이 홍콩반환 때 약속한 50년 중 절반이 막 지났을 뿐인데, 홍콩을 중국체제에 편입시키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인다.

시진핑의 조급증은 대만 문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덩샤오핑은 100년의 여유를 갖고 사람간 교류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될 것이라며 대만문제는 인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시진핑은 4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무력통일 가능성마저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 시진핑은 미국이 대만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발작 증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유지의 중요성”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자 중국 관영언론은 “한국이 대만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에 더 강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전했다”면서 “이는 중국에 도발적”이라고 발끈했다.

시진핑이 인내심을 버리고 홍콩과 대만문제에 이렇듯 조바심을 내고 집착하는 것은 그의 3연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올 가을 당 대회를 통해 3연임에 도전한다. 아니, 도전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고 예정된 수순을 밟아 3연임을 시작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덩샤오핑은 연령제한까지 두며, 특정인이 국가주석을 세 번 연임하는 것을 금지시켰지만 시진핑은 이를 보란 듯이 무시하며 3연임, 나아가 영구집권을 꿈꾸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진핑은 덩샤오핑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겠다고 작정한 듯하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덩샤오핑의 유언을 죄다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도광양회, 50년간 나대지 말고 조용히 힘을 길러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유언과 달리, 미국과의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고 있다. 홍콩문제를 보면 50년 중 딱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중국과의 체제통일을 서두르고 있다.

대만은 100년간 사람간 교류를 통한 자연스러운 통일이 아니라, 겁박과 위협을 통한 무력통일을 획책하려는 분위기다. 하나같이 덩샤오핑이 얘기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중국 지도부의 가장 큰 특징이 세가 불리할 때는 인내심을 갖고 낮은 자세로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음을 떠올리면 시진핑의 움직임은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에 더 가깝다.

이미 충분히 세가 커졌다고 판단해서 더는 눈치 볼 일이 없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3연임 대관식을 앞두고 무리수를 두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필자의 눈으로는 후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뉴스임팩트 최진우 wltrbriant65202@gmail.com

저작권자 ⓒ 뉴스임팩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