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북 핵미사일이 소환한 1994년 클린턴

영변핵 시설을 선제타격하려던 클린턴의 시나리오가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최진우 승인 2022.04.04 11:15 | 최종 수정 2022.04.04 11:16 의견 0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화성17형 대륙간 탄도탄시험발사장을 방문한 모습=sbs뉴스 유튜브 영상 캡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많은 사람들이 미국 보수정당인 공화당이 대외전략에서 진보정당인 민주당보다 더 강경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당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공화당은 의외로 외교정책에서 고립주의를 선택한 먼로주의에 가깝다. 반면 민주당은 적극적 개입으로 대외관계를 풀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실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을 선제타격하려는 첫 시도는 민주당 정부인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있었다.1994년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는 핵실험에 나서는 북한을 응징하기 위해 영변 핵시설을 타격하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실험까지 마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변핵 선제타격 시나리오는 전쟁을 우려한 김영삼 정부가 극구 반대하고, 미국과 북한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한이 NPT 복귀, IAEA 사찰수용을 받아들이는 대신, 미국이 경수로 원자로 2기와 중유를 제공하고 양국간 관계를 복원하는 선에서 갈등이 봉합되면서 실제 전쟁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은 최근 미사일 발사시험에 몰두하고 있다. 올들어 벌써 12차례나 시험발사를 했다. 전례없이 많은 횟수이다.가장 최근인 지난달 24일 실시한 미사일 발사시험은 기존 미사일 발사와는 결이 다른 것이어서 주목을 끌었다.이른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장거리 미사일 화성-17호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ICBM을 개발했다는 것은 북한의 미사일이 한반도를 벗어나 직선거리 1만1000km 떨어져 있는 미국 뉴욕, 워싱턴DC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여서 기존 단거리 미사일 시험과는 완전히 다르게 미국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 “ICBM은 안된다. 단 단거리는 괜찮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것도 단거리는 상관없지만 미국을 겨냥한 ICBM을 개발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실제로 북한이 ICBM 개발에 성공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기술개발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이번 화성-17호가 2017년 시험발사했던 화성-15호를 짜깁기한 거짓 발사, 즉 자작극이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 시험이 조 바이든 정부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바이든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밑에서 두 번의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오바마는 전략적 인내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으로 북한 핵문제를 다뤘다. 말이 인내이지 사실상 무관심에 가까운 정책이었다.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적으로 말하면 북한에 아무 것도 제시하지 않고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돌아오면 그때가서 대화하자는 식이었다.

벼랑끝 전술로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식에 익숙한 북한이 이런 식의 무관심 정책을 수용할 리가 없었다. 무관심으로 일관한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한이 핵실험에 더 몰두하고 미사일 개발에 열심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기조는 바이든 취임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바이든은 북핵문제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가졌던 의회 연설에서도 바이든은 북핵이나 북한문제를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최근 잇달아 미사일 발사시험에 나서고 지난달 24일에는 ICBM 시험발사(조작설이 돌고 있지만)를 통해 통해 긴장을 높이자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 카드를 내밀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은 지난 1일(현지시간) “복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개발을 지원한 5개 기관을 제재했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에 추가된 기관은 로케트공업부와 조선승리산무역회사, 합장강무역회사, 운천무역회사 등이다.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미국이 따로 시간을 내어 북한에 대한 제재를 발표한 것은 이례적인 행보로 보인다.

더욱이 바이든 정부는 최근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고수해온 억지와 보복 목적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이른바 단일 목적 원칙을 폐기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 목적 원칙을 버린다는 것은 사실상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바이든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 전례없는 강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서방을 겨냥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데 따른 대응으로 해석된다.바이든의 단일 목적 원칙 폐기는 핵무기로 서방을 위협하는 푸틴에 밀리지 않고 사실상 강대강으로 맞붙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지만 핵무기 사용에 대한 봉인을 해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바이든은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낮은 지지율을 받고 있다. 이번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밀리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형편없이 밀릴 것이란 위기감이 그 어느때보다 크다.바이든은 2차 세계대전 승리를 이끌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전쟁 중 강한 리더십을 보이기 위해 러시아를 겨냥해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압박전술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ICBM 개발에 집중함으로써 레드라인을 넘어 미국의 역린을 건드린 북한도 바이든이 그대로 두고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바이든의 외교정책을 만드는 주역들 대부분은 오바마 임기 말 미사일 발사 시험에 몰두하는 북한을 손봐야 한다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이다.

1994년 영변핵 시설을 선제타격하려던 클린턴의 시나리오가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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