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꿈 100년 3편] 대기업, 항공산업을 이끌다

이상우 기자 (mahadhar@naver.com) 승인 2020.03.14 19:14 의견 0

삼성항공 F-16 전투기 제작 참여, 대우중공업 KTX 사업 주도  

[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고도 성장기 국내 항공업을 이끈 건 대기업이었다. 선두 주자는 대한항공이었지만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도 있었다.

삼성항공은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77년 세웠다. 삼성정밀공업이란 이름이었다. 국내 방위산업을 키우겠다는 이병철 창업주의 뜻이 담긴 회사였다.

이병철 창업주는 1975년 남베트남 패망을 지켜보면서 방위산업의 중요성을 실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4년 삼성정밀공업은 155mm 자주포를 생산해 이병철 창업주의 의지를 실현했다.

삼성정밀공업은 1987년 삼성항공산업으로 바뀌었다. 항공업에 집중하겠다는 의도였다. 삼성항공은 한중 중형항공기 사업 주관사 선정(1994년), F-16 전투기 제작·인도(1995년), 쌍발 복합재료 항공기 개발(1996년) 등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시련이 닥쳤다. 1997년 말 시작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다. 정부는 항공업 과잉 투자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빅딜을 추진했다.

삼성항공은 항공업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항공 부문은 새로 만들어지는 항공우주산업(KAI)으로 넘어갔다. 2000년 삼성항공은 삼성테크윈으로 변경됐다. 삼성테크윈은 방산뿐 아니라 카메라, 반도체 등 디지털 분야에도 발을 디뎠다. 주요 제품은 항공기용 엔진, 광학·디지털 카메라, K-9 자주포 등이었다.

삼성테크윈은 2000년대 후반부터 실적이 나빠졌다. 카메라, 반도체 등에서 매출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삼성테크윈은 사업 조정으로 난국을 돌파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2014년 삼성은 계열사 정리 차원에서 삼성테크윈을 한화에 팔았다.

현대우주항공은 1994년 출범한 현대기술개발이 모태다. 고(故) 정주영 창업주가 항공기 제작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했다. 1996년 현대우주항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IMF가 닥치자 현대우주항공은 삼성항공처럼 정부 정책으로 항공 부문이 KAI에 흡수됐다.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는 1984년 5월 신설됐다. 독자 회사가 아닌 일개 사업부였지만 항공업에 남긴 발자취는 뚜렷하다. 당장 국내 첫 군사용 무인정찰기가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가 개발한 송골매다.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는 1991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무인정찰기 개발에 들어갔다. 9년 후 송골매가 완성됐다. 아쉽게도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는 송골매의 탄생을 보지 못했다.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과 같이 KAI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국형 기본 훈련기(Korea Trainer eXperimental·KTX) 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는 1988년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와 함께 KTX 사업에 착수했다. 기본 훈련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하려는 정부 방침에 따른 프로젝트였다.

국과연이 사업 전체를 주관하고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는 기체 설계와 양산을 담당했다. 1991년 6월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는 시제기 9대를 완성했다. 다섯 달 뒤 초도 비행도 성공시켰다.

KTX 사업의 첫 양산기(KT-1)는 1995년 등장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항공기 이름을 웅비(雄飛)라고 명명했다. 1998년 공군은 KT-1을 정식 기본 훈련기로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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