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거제식물원 매표소 앞을 보면 후박나무들이 있다. 대부분 스치듯이 보고 곧바로 열대식물이 가득한 정글돔으로 향하기에 남쪽 지방 나무로 유명한 후박나무는 들러리 같은 느낌을 준다. 왕벚나무, 먼나무에 이어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는 이 나무가 주인공인 그 지역에서 적합자가 아닌 수입 식물에 밀려 존재조차 기억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 그래도 아는 이가 있어 잠시 보면 좋을 듯도 하다. 그래도 전력으로 유지되는 정글 풍경에 눌려 아무도 추억 여행에서 소환하지 못하면 후박나무는 단발령에 저항하는 상투 튼 이처럼 이 땅에 사는 게 몹시도 서글플 것이다. 나도 사시사철 녹색 잎을 달고 이곳 대기를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만들고 있는데.
“뜰 가에 서 있는 후박나무가 마지막 한 잎마저 떨쳐버리고 빈 가지만 남았다. 바라보기에도 얼마나 홀가분하고 시원한지 모르겠다. 이따금 그 빈 가지에 박새와 산까치가 날아와 쉬어간다.”
법정 스님의 글이다. 여기에 나오는 후박나무는 전남 송광사 불일암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글이 좀 이상하다. 도감을 보면 후박나무는 녹나무과 상록 교목이다. 마지막 한 잎 같은 묘사가 나올 수 없다. 법정 스님과 정신적으로 교감한 후박나무 생김새는 일제강점기 무렵 일본에서 들여온 일본목련이다. 도감을 보면 목련과 낙엽 교목이다. 맞아 떨어진다. 일본목련이 후박나무란 이름도 갖게 된 건 일본목련 그리고 그와 비슷한 중국목련 나무껍질이 후박(厚朴)이라는 약재명인데, 이와 다른 우리나라 후박나무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 대략 뭉뚱그려 부른다고 보면 될 듯하다.
이름이야 어떻든 중요한 건 평소 나무를 존재로 사모했다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살아가는 내내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일 텐데, 12월의 차가운 바깥공기와 달리 두꺼운 패딩을 벗게 해준 거제식물원 정글돔 열기가 고맙게만 다가온다. 자생이고 바다 건너 온 것이고 하는 날선 생각은 닫힌 하늘 아래 녹색으로 촘촘한 시설을 걷다 보니 사르르 사라진다. 그래서 기능과 효율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기 그지없는 문명의 이기를 생태라는 관계적 사고가 이길 수 없는 것 같다. 당장 추운 것보다 따뜻한 게 나으니까.
국내 최대 규모 돔 형태로 지었다는 거제식물원은 2020년 1월 개장했다. 소개에 따르면, 4468㎡ 면적에 최고 높이 30m, 7472장의 유리로 덮여 있으며 돔 내부에는 300여 종 1만 주의 열대수목이 있다고 한다. 주요 볼거리는 석부작 초화원, 석부작 계곡, 포토존, 선인장원, 흑판수, 빛의 동굴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열대식물의 특징 정도는 잠깐 검색하고 가면 어떨까 싶다.
열대식물은 광합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잎이 넓고, 수분 손실 방지와 우기에 빗방울이 쉽게 흘러내리도록 하는 왁스층이 있어 잎이 두껍다. 난초나 고무나무 같은 식물은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기 위해 공중뿌리를 발달시켰고, 열대우림의 토양이 영양분이 적기 때문에 뿌리가 얕게 퍼져 토양 표면에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다양한 식물들이 많이 있어 여느 곳보다 꽃이 화려하고 강한 향을 풍긴다. 그래야 번식을 도와주는 곤충이나 새의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입구에 선 인도고무나무 크기와 색감에 멀리 이국으로 여행 온 듯한 기분을 갖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첫 번째 마주하는 풍경은 밀림을 아래로 굽어보는 것이고, 이어 귀면각, 코끼리선인장, 용설란 등 여러 종류의 선인장들을 만난다. 사막의 상징 선인장을 보면 잎이 변한 가시가 주로 떠오르는데 여기에 <랩 걸>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얹으면 어떨까?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
그 식물이 딱 거기에 있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 지난하게 분투했을까? 거기에는 분투만이 아니라 배려가 있었을 것이다. 사막이 정말 선인장이 불필요하면 온갖 박테리아를 동원해 발붙이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어찌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일 것이다. 이것이 물리화학적 관계, 이를 제대로 보는 게 관계적 사고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을 어떻게 본다고 여기면서 살아갈까? 그래서 선인장 하면 가시, 오래된 서부영화, 그렇게만 보고 지나가는 게 편하다. 바로 그때 새는 보이지 않고 새소리만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하는 듯하다.
여러모로 쉼의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제식물원의 기능, 그 본연에 충실히 따르기 위해 우리나라 야생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식물들의 온갖 자태를 수동적으로 느껴 보며 사부작사부작 걷는다. 타잔이 고공낙하 했을 듯한 폭포와 그 장엄한 소리에 이국으로의 이동을 진하게 피부에 새기며 원시로의 회귀에 푹 빠질 무렵 보리수가 눈에 들어와 안내 문구를 읽어본다.
“보리수(Bodhi Tree). Ficus religiosa L. - 이 나무 밑에서 석가모니가 도를 깨닫고 해탈했다고 하여 신성한 나무로 숭배되었으며 중세 유럽에서도 이 나무 밑에서 재판이나 축제, 충성 서약이나 결혼식이 행하여졌다. 나무의 평균 수명은 1,000년 정도이며 열매는 식용하거나 코끼리 사료로 쓰인다. 인도와 미얀마 등에 분포하며 높이 30미터까지 자라는 뽕나무과 무화과속 상록활엽교목이다.”
삐쭉삐쭉 가지런히 솟은 야자수 잎과 달리 둥글둥글 뽕나무 잎을 닮아 그런지 왠지 친숙하게 다가오는 보리수의 보리는 참다운 지혜, 깨달음을 뜻한다. 고대 인도어 보히를 중국어로 옮기면서 보제(菩提)로 썼다. 발음이 좀 거시기 해 우리나라로 오면서 보제를 보리로 읽었고, 피나무과인 보리자나무를 보리수나무로 부르며 깨달음의 사유를 건네고 있다. 우리에게는 빨간 열매가 일품인 낙엽 관목 보리수나무가 있지만, 이보다 큰 낙엽 교목 보리자나무를 보리수나무로 부르며 불교적으로 교감하고 있다.
속명 Ficus는 뽕나무과를 일컫고, 종소명 religiosa는 ‘종교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종교적인 의미가 충분한데,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단 이 가사의 보리수는 피나무를 말한다. <신의 정원, 나의 천국>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노래의 주인공 겨울 나그네가 기쁘나 슬플 때나 자꾸 이 나무 밑으로 찾아오는 것은 상당히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아마도 피나무와 우물이 함께 만들어 내는 분위기일 것이다. 옛 여인에 대한 그리움, 혹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고향 같았던 여인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마음의 평화, 깊은 휴식과 같은 잠, 아마도 겨울 나그네는 이런 것들을 찾아 자꾸만 발길이 성문 앞 우물가에 닿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틴 루터가 ‘피나무 아래 사람들이 서 있으면 그건 평화를 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리수 한 이름을 두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여러 생각이 겹쳐 온다. 인간사에만 있는 이런 사연을 모르는 눈앞의 인도보리수에 잠시 합장을 한다. 깨달음을 갈구하려면 평화를 얻으려면 그 어떤 나무든 반드시 나무 아래에서 오랜 시간 앉아 있겠다는 다짐을 하며.
후텁지근한 정글돔을 나와 거제 찬바람 한 무더기에 얼른 패딩을 입고 2024년 개장했다는 진틀리움(습지라는 뜻을 가진 진펄의 방언인 ‘진틀’과 공간을 뜻하는 ‘arium(리움)’의 합성어로 습지에 사는 식물들의 공간)에서 바닥에 엎드려 자라는 이끼를 보며 수억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전 모습에서 왜 굳이 인간이 나왔는지 하는 상상 또한 머리가 지끈거려 밖으로 나와 조경수 후박나무를 마주한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거제는 거제식물원을 가졌다. 거제에는 후박나무도 있고, 거제식물원의 열대식물도 있다.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무엇을 더 오래 기억할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법정 스님처럼 나무를 존재로 사모하는 마음 한 가득 담아가면 어떨까? 잎이 두껍다는 후박나무와 잎이 두꺼운 열대식물을 함께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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