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논단] 정진행 대우건설 부회장과 태뢰의 소
정원주 회장·김보현 대표에 압박받는 형국… 현대맨 자존심 지킬 수 있을까
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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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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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중국에 '태뢰(太牢·큰 제사)의 소'라는 옛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태뢰에 쓸 소를 골라 콩을 먹이고 비단으로 치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소를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죠. 제사용 고기를 얻기 위해섭니다. 호강하던 소는 백정의 도끼가 정수리에 떨어질 때 비로소 눈물을 흘립니다.
지난 5일 김보현 대우건설 총괄부사장이 대표이사가 됐다는 소식을 보고 문득 태뢰의 소가 떠올랐습니다. 지난달 대우건설 부회장으로 재계에 복귀한 정진행 전 현대건설 부회장이 생각나서죠.
정진행 부회장이 누굽니까. 40년 현대맨으로 명성을 떨쳤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최측근이었죠. 정재계 네트워크가 넓기로 유명하고요. 5선 의원 출신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정진행 부회장 사촌 동생입니다.
그런 정진행 부회장이 중흥그룹 산하 대우건설에 들어가자 재계 관계자들은 '꽤 큰 권한을 약속받았구나'라고 설왕설래를 주고받았습니다. 그게 아니면 뼛속까지 현대맨인 정진행 부회장이 자존심을 꺾어가며 현대차그룹보다 재계 서열이 한참 뒤떨어지는 중흥그룹에 몸담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다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정창선 중흥그룹 창업주 맏아들인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이 버티고 있는 판에 김보현 대표까지 가세했으니 말입니다. 김보현 대표는 정창선 창업주 사위입니다. 총수 일가가 위아래로 정진행 부회장을 압박하는 형국이죠.
일이 이렇게 되니 중흥그룹이 정진행 부회장을 영입한 이유가 짐작됩니다. 중흥그룹은 정진행 부회장에게 실권을 줘서 경영을 맡기거나 현대 DNA를 배우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정재계 네트워크 정도만 활용하다가 쓸모가 다하면 정리하겠다는 게 중흥그룹 속내 아닐까요. 결국 정진행 부회장이 태뢰의 소 고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셈이죠.
많은 현대 후배가 정진행 부회장을 롤 모델로 여겨왔지만 지금도 그럴진 미지수입니다. 대우건설에서 태뢰의 소 역할을 하는 건 정진행 부회장 이름값에 걸맞지 않아서죠. 과연 정진행 부회장은 현대 후배들의 실망을 뒤로한 채 완전한 중흥그룹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뒤늦게나마 정통 현대맨으로서 긍지를 지킬까요. 그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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