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 강원도 동해시 행복한섬길을 걸으면 특별한 가을이 온다

김서정 승인 2023.07.28 14:08 | 최종 수정 2023.07.28 14:10 의견 0
동해시 한섬 산책길 @연합뉴스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동해에 가면 뜨거운 모래사장과 탁 트인 바다가 있다. 최고 여름 휴가지로 선택될 수밖에 없다.

이번 여름에는 특별한 풍경을 애써 보자. 사람이 살 수 없는 듯한 곳에 있는 감추사라는 사찰을 만나고, 바위와 모래로만 된 해안선에 둥글둥글 돌멩이로 반들반들 빛을 발하는 한섬몽돌해변을 걸어보자.

그 길에서 파도에 휩쓸려 육지를 들락날락거리는 해초도 만져보고, 모래사장 경계를 끝내는 염생식물들과 아름다운 꽃에 눈길을 주자. 그러면 완성된 동해 풍경이 가슴에 가득 차 특별한 가을이 펼쳐지지 않을까.

산책 시작점은 코리아둘레길의 하나인 해파랑길에서 33코스에 해당하는 강원도 동해시 행복한섬길이다. 해파랑길 33코스는 ‘추암해변’에서부터 ‘묵호역’까지 걷는 코스로 13.6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그 사이에 행복한섬길이 있고, 그곳에 한섬해변이 있다.

그러니까 ‘행복한’ ‘섬길’이 아니고 ‘행복’ ‘한섬길’이 된다. 두 단어가 조합되기 이전의 띄어쓰기를 정확히 알아도 그런 거 몰라도 걷기만 하면 행복이 시퍼런 파도처럼 밀려와 스트레스 쌓인 마음을 하얗게 부서뜨릴 것 같다.

감추사를 가기 위해 해안도로에서 과선교를 건너면 시멘트 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남북 분단이 끝나지 않았다는 표시로 남아 있는 철책선 문으로 들어서면 고립감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듯하다.

한섬 해변@김서정 작가


하지만 해초가 살길을 찾는 바위들과 구석구석 틈마다 식물이 자라는 절벽 사이를 걸어 감추사에 들어가면 안온함이 느껴진다. 두려움 가득한 속인을 굽어보는 해수관음상과 사람의 숨결이 뜨겁지 않고 따듯하게 흐르는 것 같아서다.

백제 무왕과 혼인한 신라 선화공주 이야기로 시작되는 감추사는 대은사 분암 또는 신건암이라고 불리며 보전하여 오다가 1959년 해일에 의해 유실된 것을 1965년에 감운법사가 내사하여 사찰을 중건하고 사찰명을 감추사라고 지었단다.

1965년 당시 삼성각·용왕각·요사채 1동이 세워졌고, 1979년에는 박복수라는 이가 절 입구에 5층 석탑을 건립하였고, 2006년에는 관음전이 지어졌단다. 감추사의 감추(甘湫)는 ‘달디 단 못’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그곳에 가기 전까지 쌓인 응어리를 관세음보살 앞에 던져놓고 오면 혹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래도 모든 건 내가 안고 가야 하는 삶, 그래서 내 힘으로 모든 걸 헤쳐 나가야 하는 삶, 잠시 바다와 해안가, 그리고 내가 걷는 땅을 보며 식물이 주는 강한 생명력에 기대어보자.

한섬해변 갯메꽃@김서정 작가


무슨 말인가? 바다 속 해조류가 육지에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식물이 육지를 뒤덮지 않았다면 인간 종(種)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약 5억년 전 육지에는 세균은 물론이고 살아 있는 생명체가 하나도 없었는데, 바다 물속은 시아노박테리아나 해조류들이 가득했단다.

그곳은 자외선도 강하지 않고 온도 변화도 크지 않고 물도 바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단다. 그러면서 파래 같은 녹조류 등의 바다 식물이 육지에 올라와 이끼류가 되었고,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도 자라면서 차츰 뿌리, 줄기, 잎 등으로 분화된 모습 즉 현재의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지 식물은 조상 식물인 바다 식물들의 활동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인데, 이는 지구상의 생명 탄생 이후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불리고 있단다.

바닷가 식물을 염생식물(鹽生植物)이라고 하는데, 소금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잘 살고 못 사는 게 결정된다. 바닷가는 강한 바람과 햇빛, 사막과 비슷한 건조한 지표면, 염분이 높은 지하수 등 식물이 살아가기에 혹독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동해시 한섬 길 해변@연합뉴스

염생식물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키가 작고 누워서 자라며, 큐틴질이 발달한 두꺼운 잎 또는 바늘모양의 잎을 갖고 있다. 잎 표면에 왁스 같은 두꺼운 막층을 큐티클(cuticle)이라고 하는데, 바다 식물에는 큐티클이 없다. 수분 증발을 막는 이 큐티클 덕분에 식물들은 건조한 환경에서도 살 수가 있다.

염생식물은 높은 삼투압으로 소금물을 흡수할 수 있고, 잎과 줄기에 소금을 배출하는 소금샘이 있어서 줄기 안에 있는 염선을 타고 올라온 소금기를 내보낼 수가 있다. 그래서 염생식물 잎은 까실까실한데, 여기에 묻은 소금기가 바람이나 빗물에 씻겨나가기 때문에 바닷가에서도 잘 자랄 수 있다.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 살려고 소금 농도를 조절하는 내염성(耐鹽性)을 발달시키는 염생식물들, 국립공원연구원은 “염생식물은 기후변화나 바닷가 환경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종이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식물”이라며 서식지 보존에 힘쓰고 있다.

동해시 한섬길@연합뉴스


그렇게 바다가 주는 위안, 바닷가 식물이 주는 힘으로 뜨거운 산책을 계속하는데, 감추사를 떠나 걷는 한섬해변에서 짙은 초록 잎들 사이로 핀 분홍빛 갯메꽃들이 눈길을 끈다. 개펄을 뜻하는 ‘개’와 ‘메꽃’의 합성어인 갯메꽃은 말 그대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육지 메꽃이 아니라 바닷가에서 보는 메꽃이다.

메꽃은 메꽃과 덩굴성 여러해살이 풀이다. 언뜻 떠오르지 않으면 같은 메꽃과로 덩굴성 한해살이 풀인 나팔꽃을 떠올리면 된다. 나팔꽃은 익숙한데, 메꽃은 좀 낯설어 보인다. 그 이유가 뭘까? 나팔꽃은 인도 혹은 난온대 아메리카 귀화식물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아마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라는 동요 영향도 있는 것 같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라는 대중가요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월간가드닝>에 실린 김청 작가의 글을 보면, “울타리나 텃밭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나팔꽃과 메꽃을 구별하지 못했다. 잎과 꽃이 비슷하여 같은 나팔꽃으로 알아 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외관상 잎부터 다르다.

나팔꽃의 잎이 크고 둥근 심장 모양이라면, 메꽃은 중세 무사들이 사용하던 긴 방패나 길쭉한 창, 혹은 작은 세모꼴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말 잎을 보면 바로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계속 글을 보면 “나팔꽃은 6~8월에 피고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대에 1~3송이씩 달린다.

붉은색, 짙은 파란색, 보라색, 흰색, 분홍색 등 여러 가지 색깔로 메꽃보다는 꽃이 크고 씨앗이 생긴다”라고 하고, “메꽃은 가녀린 여인 같이 빛바랜 듯 은은한 연분홍이거나 흰색 꽃이다. 사람이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처럼 밤에는 오므리고 해가 뜨면 다시 피어난다”라고 한다. 이처럼 색깔이나 시간대로도 구별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육지 메꽃과 달리 갯메꽃은 잎이 작고 둥글고 두껍고, 한 꽃이 오래 피어 있는 게 아니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또 옆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계속 맺는다고 하는데, 그걸 지켜볼 세월은 없는 것 같다. 걸으러 왔으니 계속 걸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산의 나무도 보고 바다도 보며 피곤해지는 심신을 애써 날리고 있는데, 데크 아래 계단이 보인다. 내려가면 다시 그 길로 올라와야 하는 것 같지만 푯말이 발을 잡아끈다.

“동해안에서는 흔치 않은 몽돌해변, 억만겁 세월에 산이 갈라지고, 바위가 쪼개지고, 살을 에는 바닷바람에, 거친 파도소리에 보듬고 다듬어져 우리네 모습 둥근 얼굴로 다가온 몽돌이 어느 손길 하나 없이 온전히 보존된 지역입니다.”

맨발로 걷는 모래사장이 아니고 신발 신고 걷는 동해의 몽돌 해안은 느낌이 특별하다. 순식간에 튀어오르는 동해 수식어가 바뀌는 것 같다. 동해에 가면 위안을 주는 작은 절도 있고, 강한 생명력을 북돋워주는 염생식물과 갯메꽃도 있고, 부서지는 모래가 아니라 부셔졌어도 단단한 몽돌이 나를 지탱해준다는 걸. 그래서 오는 가을은 반드시 특별할 거라고. 그 기운이 나를 가볍게 데크 위로 올린다. 바람 한 점 안 불어도.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임팩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