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 위로가 있는 서울 강북구 오패산 아름다운 꽃샘길

김서정 승인 2023.07.14 16:32 의견 0
서울 강북구 오패산@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미아역 2번 출구로 나가 마을버스를 타면 산 정상까지 올라가 더는 오르막길을 걸을 필요가 없고, 수유역 2번 출구로 나가면 오로지 걸어야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산은 123미터의 오패산이다.

그러니까 오패산 남쪽은 능선 바로 아래까지 주택가가 들어서 있고, 북쪽은 산자락 아래까지만 인간 거주지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북쪽도 사람들이 들어가 살겠다고 작정을 하고 나무를 베고 집을 지었다면 어땠을까? 숲 산책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의 여가 문화를 북서울꿈의숲까지 원정 가서 누려야 하는 수고로움을 얻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살짝 불평이 터져 나올 수도 있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 아마존 같은 허파가 남아 있다는 건 축하받을 일일 것이다.

크고 작은 구릉지와 뒷산 개념의 숲에 집들이 들어선 건 도시 집중화 때문이다. 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필요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농 정책을 밀고 가다 보니 농어촌에서는 살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날품팔이 지게를 지더라도 열악한 공장에서 야근 철야로 몸이 고생하더라도 도시에서 살다 죽겠다는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왔고, 이들이 살 터전은 도심 속 판자촌에서 외곽 산으로 옮겨가야 했다.

거주지가 오르고 오르다 보니 산꼭대기까지 갔지만, 그래도 남은 곳은 이제 숨통을 틔워주고 건강을 챙겨주는 근린공원과 숲으로 불리고 있다. 그 가운데 오패산은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산이라 생각하고 산책을 하는데, 꽃샘길이라는 숲속 정원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쓰여 있는 이승철 님의 ‘아름다운 꽃샘길’이라는 글을 보자.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은 이 길로 오세요.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마음을 다친 사람들도 이 길로 오세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은 이 길로 오세요. 이별의 슬픔으로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도 이 길로 오세요. 이 길, 꽃샘길, 한 사람의 땀과 눈물과 정성으로 가꿔졌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의 조건 없는 사랑이 가득 담긴 길, 길바닥에는 위로의 마음이 잔잔히 흐릅니다.

이 길은 사랑의 길. 꽃과 숲의 향기와 하늘의 자애로움이 맞닿아 새들의 노래가 되고 맑은 샘물이 되어 사랑의 꽃을 피우는 꽃길입니다. 오세요. 꽃샘길로 오세요. 꽃이 있고 사랑이 있는 꽃샘길로 오세요.”

꽃샘길을 걸어본 사람은 위 문장의 느낌을 눈으로 호흡으로 피부로 받아냈을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두루두루 개입한 정돈된 풍경이 아늑하게 펼쳐진 돌길에서부터 닿는 발의 감각이 풍파로 지친 삶을 위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키 큰 참나무와 소나무, 단풍나무들이 우거진 숲길도 좋지만, 여전히 숲이 주는 원시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긴장하고 있을 무렵 아파트 화단에서 본 듯한 식물들이 사랑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 사이 사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이 나뭇가지 사이를 오고가는 새소리와 어울려 차분한 마음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산이면서도 숲이지만 길 하나 경계를 둔 산꼭대기 집들의 뜰 앞 정원이라는 생각이 평지 정원 혹은 집단 주거지와 거리가 먼 숲속 정원과 사뭇 다른 감각을 전해주는 꽃샘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꽃샘길 안내 글을 보자.

“꽃과 숲의 향기와 자애로움이 맞닿아 새들의 노래가 되고 맑은 샘물이 되어 사랑의 꽃을 피우는 꽃길입니다. 이 꽃샘길은 사진작가이기도 한 김영산 꽃 아저씨의 땀과 눈물로 정성으로 가꾸어온 아름답고 포근한 숲 속의 작은 쉼터입니다.

1994년 봄, 이 지역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쓰레기더미를 헤쳐가며 당신은 암 투병을 하면서까지도 나 혼자보다는 여러 사람과 꽃을 즐기자는 뜻에서 시작하여, 그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에 결국 암 투병을 이기고, 해마다 더 어여쁜 향기 나는 꽃동산을 만들어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꽃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꽃샘길 주인공이라 부른다.”

2년 전 김영산 님을 꽃샘길에서 우연히 뵈어 직접 조성 과정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안내문과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집 앞 숲이 쓰레기 산이 되는 게 싫어 아픈 몸으로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정성을 다해 가꾸었고, 그걸 안 강북구에서도 적극 도움을 주어 이제 모두가 지침을 위로받는 곳이 된 오패산 꽃샘길, 불볕더위를 피해 걷는데 아직 꽃이 피지 않아 동정이 어려운 식물이 한가득히 길옆에 있다.

둥글고 넓적한 잎으로 봐서는 옥잠화 같은데, 그러면 흰 꽃이 필 텐데, 혹시 보라색 꽃이 피어나면 동정 실패라 은근슬쩍 답답증을 느낀다. 그러니까 둥글고 넓적한 게 옥잠화보다 덜 하고 거기에 잎 끝이 뾰족하면 비비추라는 건데, 섞이고 섞이는 원예종이 해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시대, 이름 하나 알아두는 게 낭패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략 옥잠화 종류, 비비추 종류, 아니면 넓게 백합과 종류, 이렇게 알고 식물을 보는 게 식물과 감각 교류에서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정확한 동정이 정확한 지식이 되어 애매한 감정을 만들지 않겠지만, 식물 덕후나 학자가 아닌 이상 늘 어려운 문제다.

오패산@김서정 작가


그때 마침 아는 꽃이 나온다. 누가 심지 않아도 강한 번식력으로 전국 산하를 뒤덮고 있는 금계국이다. 코스모스보다 꽃이 크다고 해서 들여와 관상용으로 심기 시작한 식물 덕분에 코스모스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까? 서로가 서로를 경쟁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텐데,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정취는 가뭇없어지고 강렬하고도 작은 태양 같은 노란 금계국이 이전과 다른 감각의 세계를 조직해내고 있다.

닭과 연관된 모습이 있어 금계국이라 불리는 이 식물은 두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건 큰금계국으로 금계국보다 덩치가 조금 크고 노란색 일색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금계국은 길쭉한 혀꽃 바깥이 노란색을 띠다가 가운데 통꽃 경계에서 자갈색을 띠고 있어 이중 색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일부러 심었다가 이제는 굳이 일부러 심지 않아도 곳곳에서 자라는 두 종류 금계국이 나란히 있는 모습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모습은 자연 연출인지 인위 연출인지 고개 한 번 갸우뚱하고 아랫길로 계속 내려간다.

오백여 미터에 걸쳐 있는 꽃샘길 막바지에서 피지 않은 가을의 샐비어가 기억난다. 어린 시절 단물을 쭉쭉 빨아 먹었던 샐비어를 본 2년 전 추억, 무의식에 잠겼던 즐거운 감각을 다시 퍼올리는 것 같다. 한여름의 더위가 가을에 가 있는 것 같다.

샐비어는 꿀풀과 한해살이풀로 높이 60~90cm까지 자란다. 원산지 브라질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이라고 하는데 그곳보다 우리나라가 추워 겨울에 동사하기 때문에 한해살이풀로 적응했단다. 자라는 모습이 깨와 비슷해 깨꽃으로도 불리는 샐비어, 샐비어는 몰라도 사루비아는 안다.

같은 꽃이다. 외래어 표기 때문에 일본 발음 사루비아를 쓰지 않게 되었고, 샐비어 학명 ‘Salvia splendens’(살비아 스플렌덴스)’를 참고하게 되었다. ‘치유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라틴어 살비아는 라틴어라 정해진 발음이 없어 샐비어로 불러도 된단다.

오패산 나들길을 걸을 때 위로를 받고 싶으면 꽃샘길을 찾아가 보자. <나무를 심은 사람>이 가꾸어 놓은 거대한 숲만큼 의미가 있는 정원이다. 올라가기 버거운 산꼭대기 집에 사는 것도 힘든데, 집 앞 숲 가장자리가 쓰레기로 가득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숲에서 인간으로 가는 길, 그 사이에 놓인 숲 같은 정원, 정원 같은 숲을 거닐며 한 사람의 노고를 기억하고는 우리의 지친 심신에 위로를 얻고 사랑을 챙겨 다시 도시로 가자.

그게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주는 희망의 삶이지 않을까? 그게 우리가 살아갈 이유가 되지 않을까? 그 느낌을 오패산 꽃샘길이 줄 것이다. 아마도!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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