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제1, 제2, 제3의 자연이 공존하는 듯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김서정 승인 2023.06.27 13:35 | 최종 수정 2023.07.14 16:30 의견 0
순천만 국가정원@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다 걸어만 다녀도 반나절 걸리고, 자세히 보려면 하루 아니 그 이상도 걸리겠죠.”

순천에 사는 분이 순천만국가정원 동문에 내려주면서 한 말이다. 일정상 구석구석 못 볼 것 같아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공원도 아니고 정원인데, 아무리 여러 나라 정원을 옮겨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오래 걸리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1만5천원 입장권을 구하고 잠시 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무엇부터 봐야 할지 난감한 상황, 마침 해설사 분이 말을 시작해 잠시 들어보니 순천 내려온 김에 짬 내서 들려본다는 계획이 가당치도 않다는 걸 알았다. 그곳은 지리 공간으로 정원과 공원을 넘어선 평화스러운 쉼터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높은 자의 정원을 내 집 안마당처럼 우아하게 들락거리다 보면 높은 자가 된 것 같고, 공원에 가지 않을 것 같은 높은 자의 마음으로 정원 밖 공원을 거닐면 정원도 공원도 모두 내 집 울타리로 다가올 것 같다.

그러다 순천만국가정원 바깥을 흐르는 동천에 다다르면 그 끝자락에서 시작되고 있는 갈대습지로 내 자신도 연결되어 망망대해로 흐르는 것 같고, 계속 그러다 보면 온 세상을 품을 것 같은 에너지가 장엄하게 차오르는 것 같다.

사람과 터전과 숲과 자연이 영원히 순환될 것 같은 구성에 감탄을 하면서도 의문은 공부를 하게 한다. 정원은 무엇이고 공원은 무엇인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정원 이야기를 보자.

“정원을 뜻하는 서구어인 garden(영), garten(독), jardin(불) 등은 헤브라이어의 gan과 oden 또는 eden의 합성어인데, gan은 울타리 또는 둘러싸는 공간이나 둘러싸는 행위를 의미하며, oden은 즐거움이나 기쁨을 의미한다.”

이 말의 의미는 자연 속에서는 동물 등 위협 요소 때문에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기가 어려워 그들의 공격이 없는 안전한 담장 안에 인공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아닐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나온 이어지는 글을 보면, “이러한 정원에서는 향수와 감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인공적으로 이상적인 자연을 조작하기도 하고 각종 예술품이 놓여지기도 하며 정원을 만든 사람이나 소유자의 자연관 및 취미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정원은 자연과 인공이 함께 결합되어 있는 일종의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정원의 역사는 예술 발달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반대로 인간에게서 자연의 구성 요소라는 자각은 둔감하게 만들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예술(Art)는 인공적인(Artificial)이란 형용사에서 왔고, 그 반대 자연(Nature)는 자연적인(Natural)이란 형용사에서 왔는데, <정원의 발견>을 보면 그 시작점은 르네상스이다.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했던 중세가 끝나고 인본주의가 부활한 르네상스가 찾아왔을 때, 당시의 철학자들은 우리의 삶을 ‘자연(Nature)’과 ‘예술(Art)’로 구별했다. 그리고 자연 그 자체는 인간이 손을 댈 수 없는 신의 공간(영역)으로 보았고, 대신 인간의 영역은 자연 속에 살고는 있지만 예술에 의해 향상된 공간이라고 여겼다.”

이제 무서울 것 없이 자연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바꾸어가고 있어 기후위기라는 무서운 재앙을 자초하는 시대가 되고 있지만, 그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산책이 우울할 것 같아 흐르고 또 흐르는 동천에 마음을 던지다가 몸을 돌려 ‘하풍(평촌) 마을옛터’ 표지석을 본다.

“맑은 동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뒤편에는 넓은 평야 기름진 옥토가 있었던 우리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파주시에서 오신 윤근구씨가 정착한 뒤로 마을을 평촌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1949년에 순천시로 승격하면서 풍덕동 하풍마을로 부르게 되었다.(당시 82세대 거주)

그러나 1962년 8.28 대수해로 인해 일부 주민이 떠나기도 하였으나 다시 복구하여 평화롭게 살아오다 순천시의 협조를 받아 새 마을을 조성하여 1차 이주하였으며2009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장소로 선정되어 마을이 완전히 이주됨에 따라 이곳에 살았던 뜻을 모아 표지석을 건립하여 자손만대 후손에게 전하고자 한다. - 2012년 12월 15일 세움”

이 말은 사람이 살았던 곳에 공공시설을 세웠다는 건데, 여기서 공원이 아닌 정원이라는 단어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공원(park)’이란 단어는 이전에 사냥터나 마을과 마을의 경계 부분에 조성한 숲 지대를 뜻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순천만 국가정원@김서정 작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홈페이지에 나온 정원과 공원의 출현 배경을 보면, 정원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왕과 귀족 중심의 성곽정원, 수도원 등에서 시작”되었고, 공원은 “19C 산업혁명 이후 도시근로자에게 쉼터를 제공하고자 출현”했다고 한다.

즉 개인의 정원이 개방되면서 공원이 되었고, 이후 공공의 장소에는 공원 조성을 해나갔다는 건데, 정원의 주요 기능은 “재배, 가꾸기 등 가드닝과 조형미, 예술적 및 참여적 휴식, 운동 등 레크리에이션”이고 공원의 주요 기능은 “시설이용 및 경관적 기능과 식물학적 기능 없음”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원들은 정원의 기능까지 가미된 구성을 하고 있어, 인공 자연의 예술 세계를 누리는 특권은 특정인의 소유가 아니라 다수의 즐거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순천만국가정원 조성 이유를 보면, 우리 인간이 자연과 함께할 마음을 아직까지는 가지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다.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인 순천만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했는데, 순천만으로 향하는 토건국가의 모습을 막기 위해 시경계와 습지 중간지점에 정원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 그 말에 공원보다는 정원 이미지를 안고 가는 게 순천만의 영원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미리 끊은 기차표 시간이 다가온다는 핑계가 좋은 듯 순천호수정원 중앙에 있는 봉화언덕에 올라 전체를 보고 나가기로 한다. 16미터라 직진하면 금방 정상에 다다를 것 같지만 빙글빙글 도는 길을 따라 걸으니 회전목마를 탄 듯하다. 멀리서 보면 어지러운 듯해도 편안하게 정상에 서니 작은 평지가 나타났고, 군데군데 측백나무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타고 오는 바람이 안온한 마음을 준다. 이게 다 자연이 아닌 인공 덕분일까?

<정원의 발견>을 보면,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사 베르몽트가 그린 ‘자연과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그림이 나오고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1의 자연은 인간이 손을 댈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자연 그 자체에 대한 경외감을 보여주고, 제2의 자연은 장식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경작지의 개념으로 인간이 먹을거리를 심기 위해 경작한 땅을 의미하고, 제3의 자연은 인간이 담장을 치고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낸 예술의 공간으로 정원을 의미한다. 화려한 예술로 가득 차 있는 온전한 인간의 영역이다.

그래서일까, 그곳 가문에 태어나지 않은 이상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영국 찰스3세 국왕정원을 거닐고,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빌라 정원을 거닐고,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정원을 거닌 것만으로도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올라간 것 같을까. 자연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공원 같은 정원이 만들어진 안정감이 평화를 주는 것 같고, 동천에서 순천만으로 뻗어가는 탁 트인 길이 자연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길이라는 걸 인지해내고 있어서일까? 곳곳의 그림이 다 수도권 아파트단지처럼 변해가는 토건국가의 위상이 그곳에서만큼은 에코 밸트라는 신조어를 수용하려는 마음이 다져져서일까?

인간의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비인간의 영역은 갈수록 위태로운 시대, 복잡하지만 가급적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보며 현재의 쉼은 포기하지 못하는 곳,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나서는 마음은 제1의 자연, 제2의 자연, 제3의 자연 어느 곳에 있을까? 아님 지금의 KTX보다 더 빠른 교통을 원하는 마음이 빚어내는 그 어떤 자연일까? 서너 명 탄 버스가 쌩하니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떠난다. 뉘엿뉘엿은 미루고 뜨겁기만 한 저녁 햇살을 받으며.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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