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논단] 70년간 영국을 짊어졌던 한 여인의 삶과 죽음

이정희 승인 2022.09.09 12:59 | 최종 수정 2022.09.09 16:55 의견 0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위키미디어 커먼스

[뉴스임팩트=이정희기자] 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하 여왕)의 서거 소식을 접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참으로 얇다는 진리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96세의 고령이긴 하지만 불과 며칠 전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접견할 만큼 정정했던 여왕이 갑작스럽게 별세했으니 말입니다.

여왕은 70년간 재위하면서 세계 2차대전 승전 기여, 국민 통합, 왕실 현대화를 포함해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물론 모든 걸 다 잘하진 않았죠. 제국주의와 식민지 문제는 선대 국왕 시절 발생했으니 그렇다 쳐도, 1969년부터 30년이나 지속된 북아일랜드 유혈 분쟁엔 여왕도 책임이 있습니다. 정치적 권한이 없는 여왕이 아일랜드 독립 진영을 탄압하라고 직접 지시하진 않았겠지만요.

이러한 빛과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건 여왕은 곧 영국이었습니다. 그만큼 상징성이 대단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해도 여왕과의 회동을 필수적으로 잡을 정도였죠. 타국 통치자들도 여왕과 만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고요.

여왕이라고 해서 답답한 왕실 생활이 늘 즐겁진 않았겠죠. 여왕은 젊었을 때 씩씩한 여장부였습니다. 공주 신분으로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할 정도였으니까요. 사회에서 자유롭게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운명은 여왕에게 다른 인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왕도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책무를 다했고요.

고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향년 76세로 눈을 감으면서 "내가 인생에서 나에게 주어진 배역을 잘 연기한 것 같더냐? 그렇다면 손뼉을 쳐다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여왕도 아우구스투스처럼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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