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외국기업을 대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깡패짓

최진우 승인 2023.11.02 15:54 의견 0
지난 8월 하이네켄이 러시아 법인을 1달러에 매각하고 철수했다.@연합뉴스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러시아가 사업상의 이유로 자국을 떠나려는 기업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할 것이라고 경고해 논란이 크다. 갖은 사탕발림을 내걸어 들어오라고 사정할 때는 언제고, 정작 떠나려니 맘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깡패나 다름없는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발발하고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러시아에서 탈출하려는 서방기업들이 늘어나자 러시아 당국이 강제로라도 붙잡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가진 브리핑에서 “러시아를 떠나는 기업은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분히 서방기업을 겨냥한 그의 발언은 러시아를 떠나려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으름장이나 다름없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기업의 조건에 관한 질의에 “자유로운 출구는 없다”고 잘라 말하고, “정부의 특별 위원회가 엄격히 규제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연합뉴스


러시아가 어떤 기업들에, 어떤 규제를 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게 없다.
다만 페스코프 대변인이 “서방국가들과 러시아가 사실상 ‘준 전쟁’ 상태인 점을 고려하여 서방기업들에게는 특별한 체제를 적용할 것”이라고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에 적대적인 국가의 소속 기업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가 작년 2월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한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일치단결하여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이어나가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러시아가 ‘적대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국가는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국가는 중국을 제외하면 눈을 씻고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불이익과 관련해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러시아를 떠나려는 기업의 경우 사업매각 대금에 대한 처리를 달러가 아닌, 러시아 루블화를 사용할 것을 강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달러화 대비 가치가 떨어진 루블화를 강제하겠다는 것은 사업매각 자체를 어렵게 하고, 루블화 가치도 안정시키겠다는 러시아 정부의 속셈인 듯 하다.

만약 사업을 매각한 서방기업이 달러화를 고집할 경우 해외 송금이 지연되거나 금액 손실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적했다.

유럽,일본,한국자동차 회사가 러시아 법인을 철수하자 중국자동차회사가 시장점유율 49%로 1위를 달리고 있다.@연합뉴스


일이 틀어지면, 모든 것을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특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다게스탄 공항에서 반유대주의적 폭력 시위가 벌어진 것과 관련해서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이번 시위를 조장했기 때문”이라고 밑도 끝도 없는 비난을 퍼부었다.

푸틴은 이 회의에서 “외부세력들이 이번 시위를 조장해 러시아 사회 불안을 일으켰다”고 날을 세웠다.

러시아 국민들이 직접 주도하고 참여한 반유대주의 시위 조차도 우크라이나와 서방 등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푸틴의 주장은 근거나 논리에 의존하지 않는, 막가파식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의 전형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비슷한 예는 중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올해 7월부터 대폭 강화된 반간첩법을 외국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어 외국기업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강화된 반간첩법은 해석하기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중국정부 입맛에 따라 적용될 소지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베이징의 감시 카메라@연합뉴스


실제 일부 외국기업 임직원들이 이같은 강화된 반간첩법에 걸려 구금이나 체포 등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하는 사례가 나타나자 많은 외국기업들이 중국에서 과연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다.

중국은 뒤늦게 반간첩법이 광범위하고 모호한 규정 때문에 중국인은 물론이고 외국기업의 중국 내 활동까지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커지자, 중국 방첩기관을 앞세워 외국기업 달래기에 나서기까지 했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지난달 24일 위챗 공식 계정에 게시한 '반간첩법의 오해와 올바른 해석'이라는 글에서 “절대다수의 목소리는 중국의 정당한 입법 활동을 존중·지지하지만, 일부 오독(誤讀)이나 심지어 악의적인 공격이 있다”며 “외국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걱정은 잘못된 관점"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안전부는 또 “중국의 반간첩법 제도는 분명하고 공개적이며 투명하다”면서 “외국 기업과 외국인의 중국 내 합법적 경영·투자·업무·학업·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외국기업은 안심해도 된다는 식으로 밝혔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 경찰이 캡비전의 상하이 사무실을 급습해 조사하고 있는 모습이 중국 관영 CCTV를 통해 보도됐다.@연합뉴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시장개척과 저가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의 경제적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2000년대초 앞다퉈 중국으로 몰려간 것이나, 러시아에 공장을 세운 것은 사업적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계산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기들 구미에 안맞으면, 언제 기존 정책을 뒤집을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존재들이다.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업을 운영중인 서방기업들로서는 정치적 잣대를 시도때도 없이 들이대는 막가파식 행태에 기가 질렸을 것이다.

wltrbriant652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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