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꿈 100년 1편] 국내항공역사 1편,해방 전, 하늘을 꿈꿨던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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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로우스 비행 학교=YTN 유튜브 캡처

1903년 미국인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 형제가 세계 최초 동력 비행에 성공한 이후 항공은 산업으로 발전했다. 항공업이 성장하자 지구 밖으로 나가는 우주 산업도 생겨났다. 둘을 합쳐 항공우주산업이라 부른다. 항공우주산업은 미국 등 선진국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국내에도 하늘을 꿈꿨던 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후예가 지금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KAI를 중심으로 국내 항공우주산업 역사를 돌이켜본다.

[뉴스임팩트=박용석기자] 한국 항공우주산업은 일제시대 때 태동했다.

그 엄혹한 시기에도 하늘을 꿈꾼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이는 한국 최초 비행사로 꼽히는 안창남이다.

안창남은 1901년 서울 종로구 평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오쿠리 비행학교에 입학했고 1년 후 비행사 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했다.

1922년 도쿄-오사카 우편 비행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1922년 12월. 안창남은 역사적인 모국 방문 비행을 이뤄냈다. 그는 5만 관중 앞에서 두 차례 하늘을 날았다.

일제에 자존심이 짓밟힌 식민지 조선인들은 안창남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그는 조선인들이 사랑하는 슈퍼스타가 됐다.

안창남은 유명인으로 머물지 않았다.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던 그는 1924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안창남은 중국으로 건너가 산시성 군벌 옌시산(閻錫山) 항공대의 비행 교관이 됐다.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독립공명단을 만들기도 했다.

1930년. 안타깝게도 안창남은 옌시산 항공대의 특별기를 시범 비행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한국 최초 비행 학교는 1920년 임시정부가 설립했다. 윌로우스 비행 학교다. 위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카운티 평원이었다. 비행 학교 실무는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이 맡았다.

학교엔 당시 신형 비행기였던 스탠더드 J-1 훈련기가 3대 이상 있었다. 운용. 조종, 정비, 무선통신, 군사학 등에 대한 교육도 이뤄졌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행 학교 주요 출자자였던 김종립이 파산한 것이다. 학교는 기울기 시작했다. 재정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한 학교는 1921년 4월 파산했다. 하지만 학교의 정신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 공군사관학교가 윌로우스 비행 학교를 계승해서다. 여성도 비행기를 몰았다.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는 권기옥이다.

그는 1923년 4월 임시정부 추천으로 중국 윈난 육군항공학교에 1기로 들어갔다.

권기옥은 중국 비행대에서 복무하며 일본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광복 후엔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 등으로 활약했다. 청연이라는 이름의 박경원, 이정희 등도 여류 비행사로 명성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