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푸틴과 시진핑의 위험한 브로맨스

최진우 승인 2022.04.11 16:47 의견 0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CGTN유튜브 영상 캡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근 행보는 로드무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로맨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죽고 못사는 사이처럼 상대방의 잘못을 감싸주며 애정을 듬뿍 과시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푸틴이 지구촌 왕따로 위상이 전락하면서 시진핑의 푸틴 챙기기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중국과 러시아 관계가 지금처럼 좋았던 적이 있었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과 러시아 관계는 1600년대 명나라 시절까지 가겠지만 양국간 실질적 접촉은 청나라 순치제 때의 나선정벌과 강희제 때의 네르친스크 조약이 시발점이었다.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멀지도 않았던 두 나라의 관계는 18세기 캬흐타 조약을 계기로 조금 더 가까워진다. 캬흐타 조약은 두 나라 통상문제의 해결과 국경문제가 처음 확정된 역사성을 지닌다.

아무르강을 경계로 했던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간에 맺었던 조약은 하지만 청나라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하면서 조약으로서의 의미를 잃었다.적백내전을 거치면서 몽골은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갔고 중국은 마오저뚱이 이끄는 공산당이 장세스가 이끄는 국민당을 패퇴시키며 중화민국 수립에 성공했다.

세계 양대 공산국가로 자리매김한 중국과 러시아는 이후 협력과 반목, 갈등을 반복했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위험인물로 보고 경계했으며 마오쩌둥은 스탈린 사후 수정주의 노선으로 갈아탄 러시아(구 소련)을 배신자로 칭하며 비난했다.

급기야 1969년 중국과 소련간 국경분쟁이 일어나면서 두 나라 관계는 급속도로 식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미국이다.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주도한 이른바 핑퐁외교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 마오쩌둥과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 사진을 연출했다.

이후 미국은 중국과 소련을 더 벌려놓기 위해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 수교하는 등 양국간 관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런 중국의 행보는 소련을 자극했고, 소련은 중국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 접근하며 두 나라의 갈등을 극에 달했다.

두 나라가 다시 관계를 회복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구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다. 중국은 198년 텐안먼 사태로 인해 미국과 관계가 크게 소원해졌고 소련 역시 체제붕괴 후 유일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정략적인 차원에서 중국과 손을 잡았다.

양국이 본격적인 협력의 길로 접어든 것은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두 나라 모두 미국과 혹독한 갈등을 겪은 후였다. 오바마는 중국에 대해선 느슨하게 대하면서 러시아를 집중 견제했고, 트럼프는 거꾸로 러시아에 유화적이었던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가혹한 제재를 가했다.

푸틴과 시진핑은 이 기간, 미국의 적대적인 대외전략에 시달리면서 동병상련을 느꼈을지 모른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으로 러시아가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궁지에 몰리자 중국이 구원투수를 자처하며 긴급자금을 지원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은근히 브로맨스 관계를 유지하던 둘 사이를 더 친밀하게 만든 것은 트럼프의 뒤를 이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바이든은 오바마와 트럼프를 합친 완전체 마냥 러시아와 중국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었다.

이런 움직임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더 심해졌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궁극적으로는 푸틴을 퇴진시키기 위해 유럽, 아시아 국가를 하나로 묶어 대러시아 제재를 공고히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이 러시아 편을 들지 못하도록 각종 말폭탄을 쏟아내며 경고와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떼려야 떼기 힘든 사이가 된지 오래다. 러시아인들은 중국을 최대 우방국으로 인식하고 있고 중국인들은 푸틴을 미국에 맞서는 영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중국과 러시아는 군사협력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상호의존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러시아의 중국경제 의존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두 나라간 교역규모는 2018년 이미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상대적으로 가팔라지면서 러시아는 한편으로 중국이 계속 성장하면 언젠가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위기감과 중국경제에 먹힐지 모른다는 경계감을 갖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중국은 러시아의 첨단기술을 베끼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어 러시아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불편과 갈등 속에서도 푸틴과 시진핑은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굳건한 협력관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을 물어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이 유례없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러시아는 이제 손을 벌릴 곳이 중국밖에 없다.

전쟁이 길어지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도가 더 강해질수록 푸틴과 시진핑의 브로맨스는 앞으로 더 강도높게 진행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전례없는 두 나라 지도자의 브로맨스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바뀌거나 정치지형에 변동이 생길 경우 언제 다시 등을 돌릴지 모를 위험한 적과의 동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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